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5
청솔고개
2003. 8. 19. 화. [다섯째 날]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잠이 설쳐져서 그냥 TV시청으로 보내다가 다시 잠깐 잠들었다가 4시에 기상하였다.
식사 후 8시 20분에 호텔에서 출발하였다.
날씨는 뜨겁고 맑은 전형적인 여름 날씨다.
“몇 시간 안 걸립니다…….”, “한 시간 남짓 남았습니다…….”하는 가이드의 안내가 긴 여정에 너무 지치고 힘들까 봐 우리들을 배려해 주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가이드 미스터 장은 풍기는 인상이 매우 진지하고 진실 되어 보이는데 비해, 미스터 박은 유머러스해 보이고 순박한 풍모이다.
오전에는 오타와 시내 관광을 했다.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이다. 총독관저를 찾았다. 잘 조성된 나무와 잔디가 쾌적한 느낌을 준다. 위병교대식을 보러 일부러 시간을 맞추어 갔다. 벌써 요란한 나팔소리가 들린다. 연습하는 중이라 했다. 이어서 위병 교대하러 나오는 위병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전통 영국 위병의 복장과 행렬을 이렇게 공개함으로써 뿌리 깊은 전통 문화가 없는 이 나라에서 이런 식으로라도 문화 관광 자원을 개발하고 보여 주려는 고충이 보인다. 영연방의 일원인 이 나라는 어쩌면 식민지 국가로 간주 받는 오해를 무릅쓰면서도 영국의 문화를 그대로 이식하려는 듯한, 이러한 모습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위병은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이고 무표정하게 관저 정문 양쪽에 한 명씩 교대하는 의식을 보여준다. 모두들 영국 왕실 근위대라도 보는 듯 위병과 기념 촬영에 여념이 없다.
바로 주의사당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열병식도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한 시간도 넘는 장엄한 의식이 한여름 오전의 뜨거운 열기에 못지않았다. 많은 관광객들은 벌써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미동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여겨지는 의식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의사당 건물은 전통 영국의 고딕 양식으로 수많은 첨탑과 종루, 돔 등의 구조로 화려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 뒤편으로 가니, 리도 운하[Rideau Canal]가 깎아지른 듯한, 단애 아래 펼쳐졌다. 운하의 물은 검푸르렀고 이 운하와 이어진 저 멀리 세인트로렌스 강의 시원스런 모습에 여객은 한없는 이국정취에 사로잡힌다. 구입한 엽서의 그림에는 눈이 수북이 쌓인 얼어붙은 이 운하를 스케이트를 탄 시민들이 까맣게 덮고 있는 모습으로 볼 때 겨울 이 지역의 기후와 풍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쾌한 행진곡에 발맞추어 열병과 분열을 하던 영국군 복장을 한 군악대와 의장대는 영원의 불이 타오르는 정문을 통해서 퇴장하고 있다.
오전 11시에 11시 50분까지 엊저녁식사를 했던 한식당에서 사골우거지탕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오후 일정인 몬트리올로 향발하였다.
몬트리올 하면 1972년에 우리 올림픽참전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레슬링 라이트급 양정모 선수를 기억할 것이다. 연장전까지 갔지만 무승부였는데 양 선수는 500g 체중 감량 때문에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고 가이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설명한다.
성 요셉 성당을 찾았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거대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니 이 성당의 창시자인 요셉에 관련된 많은 자료와 흔적이 보인다.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 이 성당의 영험으로 많은 장애자들을 기적으로 회복시켜주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숱하게 많은 지팡이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특히 이 분이 처음 지어서 사용했다는 교회당이 그대로 성당 오른쪽 산 밑에 보존되어 있었다. 키가 작은 이 분이 실천했다는 신앙체험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저 멀리 숲에 잠긴 이 도시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평화로운 도시다. 이 도시의 한켠 구시가지의 모습도 보았다. 자유분방한 시민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는 거리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 문신 새겨주는 사람, 초상화 그려주는 사람, 캐리커처 그리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거리 악단의 모습, 마술 보여주는 사람 등 도시는 한 여름 오후이지만 활기에 넘친다.
오후 6시 30분이면 도착한다는 퀘벡(Quebec) 주의 한 지역 도시인 트로와 리비에르에는 7시 30분 넘어서 도착하였다. 숙소 이름은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앤 스위트 트로와 리비에르 외스트' (Holiday Inn Express & Suites Trois Rivieres Ouest). 길기도 하다.
인디안 말로 몬트리올(Montreal)은 '반짝이는 물'이란 뜻이고 이 퀘벡은 ‘물길이 좁아지는 곳’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그야말로 멀고 먼 대륙여행의 북쪽 종착점에 도착하였다. 이제 내일 이 주의 주도인 퀘벡 시 여정을 마지막으로 반환하여 내려가야 한다. 북위도가 점점 높아져서 그런지 햇볕도 엷어지고 서늘해지는 것 같다. 아마 위도 상으로 아시아 중국 하얼빈 정도 될 것 같다. 퀘벡 주에 가까워질수록 이 장엄한 북미대륙 일몰과 황혼의 정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 본다. 그러니 일행 중 조용히 내게 다가와서 혹시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한다. 그런 말들에 별로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는다. 나의 진지함과 광적인 기록 벽을 그들이 이해해 주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중국식 뷔페에서 좀 분위기 있게 했다. 식당의 규모도 거대하거니와 음식의 다양함에도 혀가 내둘릴 지경이다. 현지인 가족들이 많이 와서 느긋하고 즐겁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부러울 지경이다. 이른바 프랑스식 식사법인가. 가만히 들어보니 말소리들이 모두 영어가 아닌 불어였다. 드디어 캐나다 특유의 통치 방식, 그들의 조상의 문화를 인정해주기 위해서 불어권 지역, 독어권지역, 영어권지역으로 나누는 것을 인정하는 이 나라만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한 끼 식사를 흔히 때웠다고 말하는 습성이 아직까지 남아 왔지만 이들은 즐긴다고 말한다. 그래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풍성한 대화가 식탁의 반찬으로 등장하는데 우리는 식사시간에 말 많이 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지 않은가? 바로 이런 차이다. 엄청난 관습과 문화의 차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이런 것들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확고한 선택이 남아 있다.
튀김으로 만든 개구리 뒷다리 요리에 구미가 당긴다. 그밖에 이름도 모를 많은 진기한 음식재료와 음식을 보기도 하고 먹기도 하였다. 태국여행 때 샹그리제 호텔의 씨 푸드 식사가 생각난다. 바로 그런 분위기랄까? 식당이름이 불어식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잘 인식이 안 된다. 식사 후 호텔 객실에 오니 9시다. 알레르기성 피부염과 피로 누적으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그리고 이 북미 중 북쪽의 마지막 여행지가 될 이곳의 밤거리를 한 번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외출하자 했더니 10분만, 10분만 하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정말 못 말리는 아내다. 더 이상 이국의 밤거리 산책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나도 잠이라도 저축해 놓자는 심정으로 잠을 청해 보았다.
2020. 8.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