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떠납니다"
청솔고개
잇달아 예보되는 태풍 ‘하이선’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는데도 벌써 여기도 그 조짐이 나타난다. 어제 하루 반짝 햇살이 나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서늘한 바람이 분다. 오후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그래도 아직 그리 심한 기세는 아니다. 오늘도 또 떠나야 할 것 같다. 연 3일째다. 아무래도 그냥 있으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배낭을 바로 챙겼다. 나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하루 중 잠시라도 저 자연에 내가 의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희한하게 내 하초 저림도 오후 시간이면 거짓말 같이 사라진다.
들머리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흩뿌린다. 차에서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등산화를 꺼내서 갈아 신는다. 산행은 이런 날이 더 좋다고 속으로 주고받는다. 옷과 몸이 빗물에 조금씩 젖어 가면 내 몸의 열기와 땀도 식어가서 서늘해지기 때문이다. 햇살이 쨍쨍한 날은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려 온몸이 젖고 이런 날은 열이 찬 온몸이 빗물에 식혀지기 때문에 옷이 젖는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날의 저체온증이다. 멀리 들판을 달리고 있는 완행열차 소리가 바로 옆에처럼 들린다.
오랜만에 우중 산행에다, 저체온증 등을 맞닥뜨리니 문득 2008년 8월 21일에서 23일까지 아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종주 산행이 생각난다. 그 때 태풍을 만나 꼬박 이틀 동안 고생했었다. 이 산행은 우리 부자간의 오랜 약속이었다. 아이가 군 복무 중 면회 가거나 편지 주고받으면서 제대하면 그 기념으로 이 코스로 산행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던 것이다. 그 후 몇 차례 이 약속을 상기시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난 다음 나는 이 산행 계획을 잊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린 체 했다. 시간적, 심리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내 먼저 덜컥 이 산행이 자신이 안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겁이 좀 났었다.
아이가 그 해 봄에 제대를 한 후, 이 산행 약속에 대해서 먼저 거론하였다. 나는 짐짓 모른 체 하였더니 아이가 더 적극적이었다. 나는 속으로 옳다구나 하고 못 이기는 체, “그러면 동행하자, 이건 정말 멋진 우리 부자의 동행 종주 산행이 될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고 바로 날짜를 잡고 대피소 예약에 들어갔다. 첫날 연하천 대피소는 무난히 예약 성공했다. 둘째 날은 장터목 대피소를 예약해야 천왕봉 일출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결국 밀려서 불가피하게 세석평전 대피소로 예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발 첫날은 날이 잔뜩 흐렸다. 산행하기 좋다고만 생각하고 ‘히히 호호’ 하면서 잘도 걸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아침부터 그해 홍콩에서 소멸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끼친 태풍에 동반한 폭우가 몰려왔던 것이다. 이 산행 계획에서의 가장 큰 허점은 기간이 한여름이라고 지나치게 방심한 것이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고 하지만 평균 1500미터 고도라는 사실을 간과했고 또 폭우 등 기후급변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것이다. 또 우리는 짐을 가볍게 하는 것에만 신경 써서 버너마저도 준비해 오지 않았다. 이런 지형과 폭우에는 아주 무장해제 수준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버너만 있었더라도 어디 바위 틈이라도 찾아들어가서 억지로 불 피워서 식어가는 몸이라도 좀 녹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후회막급이었다.
여기에서 바로 대두 되는 것이 저체온 증이었다. 준비한 우의라고 해야 일회용 비닐 우의가 고작이었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산행하면서 밥 지어 먹는 게 힘 든다고 해서 취사도구를 생략하는 바람에 아내가 고집스레 챙겨준 떡과 빵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둘이서 2박3일 먹기에도 너무 많아 보이는 양이었다. 그 떡과 빵의 진가가 둘째 날 발휘된다.
둘째 날, 우중에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나는 거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여름 추위에 벌벌 떠는 생쥐였다. 찬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걸으니 체력이 배나 더 들었다. 금방 추위와 허기가 몰려온다. 이 심산에서는 암만 가도 젖어 뭉개질 듯 한 내 한 몸 따스하게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없었다. 계속 뛰다시피 걷는 것만이 유일한 체온 유지 방법이었다. 잠시만 서 있어도 바로 추위가 엄습해서 벌벌 떨리고 어질어질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허겁지겁 달리니 또 허기가 몰려온다. 빗물에 뭉개진 과자 부스러기 간식이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배낭 맨 밑에 저장해 놓았던 떡 뭉치를 꺼내 뜯어먹으면서 걷는다. 바로 허기가 면해진다. 걸을 힘이 다시 생긴다. 빗물에 짓이겨진 떡 조각을 연신 입에 구겨 넣으면서 한편으로는 얼어 죽지도 않으려고 달리고 또 내달렸다. 내 몸에 온기가 이렇게 절실한 적은 내 생애 처음인 것 같았다.
그 떡이 동났다. 이제 빵의 등장이다. 빵을 뜯어먹으면서도 저체온증 극복을 위해 산악구보나 산악마라톤처럼 산행하는 것이다. 이 위난을 극복하는 방책이다. 드디어 둘째 날 묵을 세석평전 대피소가 얼마 안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는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세석평전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선착 산꾼들이 득시글댄다. 온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땀내와 열기로 실내는 뭉게뭉게 김이 피어오른다. 몸을 좀 녹인 후 산장 밖으로 나와 저 멀리를 바라보았다. 폭우 뿌리는 것이 마치 뿌연 장막을 한 장 한 장 펴 들고 흔드는 것 같아 보였다. 산천초목이 이 세찬 비바람에 떨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안심!’하고 하이파이브하고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한 새벽 2시 출발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중 산행과 저체온증에 대한 오랜 상념에서 벗어나니 바로 앞이 일천바위다. 내 몸은 이미 빗물과 땀으로 푹 젖어있다. 그 구성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는 지리산 종주코스도 아니고, 길어야 두 시간 뒷동산 올라가는 것이다. 내가 내 안에 발생하는 또 하나의 난국을 타인이 되어 구경할 때 느끼는 안도의 심경이 돼 저 하계를 내려다본다. 하계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오리무중이다. 마치 그날 세석평전 대피소에 도착해서 하계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실감하였을 때의 안도감 그대로다. 안개 속에서 몰아치는 비바람을 통해서 느꼈던 그때의 심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직에 있을 때, 한 답사모임의 모토가 “비가 와도 떠납니다”가 기억난다. 우중의 일천바위는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그 새로운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비가 와도 떠납니다”이다. 저 아래 안개 자욱한 골짜기에서 우중의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느껴진다. 2020.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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