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대마도에서의 힐링, 그 첫째 날
청솔고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여행 떠나는 아침이라 설레지만 불안하기도 하고 내 친한 화두가 또 뇌리에 꽂히는 것 같다. 새벽 6시 30분까지 만날 장소에 갔다. 벌써 일행이 다 와 있었다. 내 차에 내 동행의 빈자리가 있어 오늘따라 참 아쉽다. 앞서 막 달려가는 친구 차 따라 도착하니 7시 30분 쯤. 출국 수속에 들어갔다. 일본 갈 땐 늘 여기서 출발하여서 좀 익숙해진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이다. 친구의 딸내미가 만들어온 빵 조각에다 커피와 김밥은 구입해서 간략한 아침 요기를 마쳤다.
오전 9시 31분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항'. 다시 화두가 엄습한다. 마침 내 자리는 일행과 떨어진 뒷자리라서 혜민스님이 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펼친다. 내 메모장엔 벌써 “마음이 어지럽다. 혜민의 글을 읽는다. 마음을 비우고 멈추라 하지만 비우면 또 채워지고 채워지면 멈춰지는 게 아니라 가속도가 붙어서 자꾸 달려가니 그게 문제다.”고 적어진다. 오전 9시 50분 되니 여객선은 벌써 내해를 다 벗어난다. 좀 떨어진 창문을 통해 부산항 부두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본다. 가이드가 앉아서 쉬고 있는 옆 창문을 통해서 촬영한다. 출발 순간이 중요하니 그 상황은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하는 나의 생각이다.
하선하는 순서를 각 팀별로 추첨을 한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란다. 하선 수속이 무척 지루하고 질릴 거라고 미리 말해 준다. 거의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우리 팀이 제일 늦게 내리게 되었다. 우리 팀은 뒷자리 꼬마를 데려가서 추첨 대표로 했는데 결과가 그리 나와 버려서 가이드도 좀 멋쩍은 표정이다.
오전 11시 좀 지나 일본 쓰시마 히타카츠 항구에 도착했다. 뱃길은 평온하다. 하선 수속하는데 거의 1시간 10여분 소요되었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일본식 식사를 하니 12시 40분, 식사는 간결하고 담백했다. 어찌 보면 좀 빈한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도 종류는 제법 되었다. 일본 정통 우동, 유부초밥, 김밥, 어묵, 스시가 메뉴다.
식사 후 12시 50분에 예정된 여정으로 출발했다. 첫 코스는 러일전쟁 추모 우호비가 있는 도노자키 전망공원을 거쳐 갔다. 이 앞바다에서 1905년 러․일 양국이 격전을 벌였는데 러시아 군인 5천명이 여기서 수장되고 결국 일본이 승리하였다고 한다. 이 기념물의 명분은 평화지만 러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려고 하는 일본의 의도가 보이는 것 같다. 부조에 누워 있는 조각상이 로젠스키 당시 러시아 장군이라고 했다. 러․일 양국 두 장군의 후손이 전쟁을 잊지 말고 평화를 추구하자는 의미에서 세웠다고 한다. 옆에는 ‘友好’, ‘平和’라고 세로로 씌어져 있다. 나에게는 의미는 없는 그냥 단순한 전망대로 보인다.
다음 코스, 10분 거리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오후 1시에 일본 100대 해수욕장에 속한다는 미우다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모처럼 콩고물 같은 백사장을 밟아보고 진초록, 연초록, 코발트, 감청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물빛을 즐기면서 모두들 최대한 행복하고 편안한 표정을 담는다. 특히 ㅈ님은 사진 찍기, 포즈 취하기를 참 즐겨한다. 이것도 하나의 취향이다. 솔직하고 좋은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오후 1시 30분 다시 차에 탑승했다.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된다. 자신을 김상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차 안에서 가이드의 안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쓰시마는 제주도 면적의 40%, 거제도의 두 배. 남북 길이 82km, 인구 33,000여명 3명중 1명이 65세 이상 분포. 사람 구경을 거의 할 수 없는 한적한 낙도 같은 곳. 그냥 시골 섬마을. 바쁜 것 없이 그냥 천천히 흘러가는 곳. 시간도 쉬어 가는 섬. 그런데 요즘 이런 섬의 분위기가 오히려 한국인들한테 대 인기. 특이한 것은 바다 특유의 짠 내 즉 갯냄새가 없다는 것. 그 이유는 90%나 되는 산에서 나오는 나무 냄새가 바다 냄새를 잡아서 그러하다고 한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편백(히노키), 삼나무(쓰기), 대나무 등이 섬 전체를 덮고 있다고 한다.
다음 코스는 한국 전망대는 오후 1시 40분 좀 지나 도착했다. 맑은 날이면 부산이 보인다고 한다. 부산서 여기까지는 49.5km로 고속도로라면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150km이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서 밤에는 부산국제불꽃놀이도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제법 짙은 해무로 윤곽조차 가늠이 안 된다. 이곳이 여행지로 개발된 계기는 1990년대 우리나라 낚시꾼들의 진출이었다고 한다. 일본어 몇 마디를 가르쳐 주는데 제법 재밌다. 이번 기회에 간단한 일본어 회화집이라도 가져와서 시험 삼아 몇 마디라도 익혀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좀 아쉽다. 11월에 홋카이도 자유여행 때 대비한 사전 연습이라도 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든다. 현지어 몇 마디만 익히면 그 여행의 즐거움과 묘미가 한층 더 할 것이다. 돌아가서는 반드시 실천하고 싶다. 많은 수의 터널과 밭 가장자리에 만들어 놓은 멧돼지와 사슴 범접 방지용 그물이 이 섬을 상징한다. 한 마디로 이 섬사람들은 굶어 죽기 딱 좋은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산에서는 나무하고 바다에서는 소금 구워서 겨우 연명했으며 거의 노략질로 생계를 꾸렸었다고 한다. 지금은 농․어업에 20%, 건설 제조업에 20%, 서비스업에 60% 종사한다. 서비스업은 바로 우리 한국 사람의 방문으로 활성화되고 있는데 한국의 관광객이 이 섬사람들을 거의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에는 무려 2천 명 정도 방문한다. 한국인들에게 대체로 고마워하면서도 일부 방문객들의 도로, 교통에 대한 무신경, 쓰레기 투기, 음주 추태 때문에 마냥 반기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청정지역이라서 술을 마셔도 처음에는 잘 취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극히 일부이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오후 3시 좀 지나 까마귀 모자라는 뜻의 에보시타케 전망대에 올랐다. 대마도의 자랑인 아소만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감동과 감성이 살아 있는 사람은 면역세포가 활성화되어 앞으로 20~30년 동안 병들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이곳을 보고 ‘아!’하고 탄성이 질러지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김상은 강조한다. 정말 위로 올라 갈수록 마치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우리 남서해의 다도해를 합성해 놓은 듯은 신묘하면서도 그윽하고 광활하면서도 화려한 풍광이 펼쳐진다. 이번 여행에서 이것 하나만 보고 가도 그 보람과 감동은 충분할 것이다. 정상에는 난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여성동지들의 사진을 몇 장 담았다. 오후 3시 30분 좀 지나 바다의 신을 모신 와타즈마 신사를 찾았다. 입구는 울창한 대마도 특유의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있다. 김상은 편백과 삼나무를 잘ㄹ 구분해 설명해준다. 우리나라사람들의 힐링 열풍에는 편백의 피톤치드가 그 중심에 있다. 그래서 이 섬은 그냥 ‘쉬어가는 섬’, ‘시간도 쉬어 가는 곳’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입구 신사 옆 소나무 뿌리가 거의 10여 미터로 퍼져나가 있다. 마치 용트림 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참 이채롭다.
이어서 러일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거대한 구조물 즉, 만관교(만제키바시)와 만제키세토 운하를 거쳐 갔다. 그냥 차에서 내려다보니 주황색 칠을 해 놓은 다리와 푸르고 투명한 바닷물 빛만 볼 수 있었다. 다음은 해수온천욕 코스다. 이럴 경우 시계, 카드, 현금 등 소지품이 늘 신경 쓰인다. 잠금장치가 돼 있다하니 일본 사람들의 정직성을 믿고 그냥 들고 들어갔다. c, k 등 동행들과 같이 옷을 벗고 목욕하기는 참 오랜만이다. 한 시간 가까이 적당히 좋은 온도의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 기분이 좋다. 모처럼 옛 친구들과 같이 이렇게 발가벗고 목욕을 하니 옛 생각이 난다. 더구나 k는 건강이 아주 안 좋은데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오랴 생각하니 마음이 좀 애잔해진다. 반 노천탕에도 가서 피로를 풀었다. 이제 숙소 가는 일만 남았다. 숙소는 대마도 남쪽에서 제일 큰 이즈하라 시 근교다. 밤에 바비큐 요리가 있다 하니 기대가 된다. 숙소는 ‘민숙(民宿)’이라는 명칭으로 우리나라 ‘민박(民泊)’과 같은 의미다. 새로 지은 깔끔한 집에 다다미방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녁 식사는 밖에서 바비큐로 했다. 밥, 생선, 조개 구이 요리다. 단출하고 맛깔스럽다. 특히 짜지 않아서 좋다. 호텔이나 복잡한 실내 식당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서 좋다. 반주도 한 잔씩 했다. 준비해 간 맥주가 턱없이 모자라 주인한테 가서 손짓발짓해가면서 아사히 맥주 두 병을 1,400엔 주고 사와서 마셨다. 옆에는 부산서 왔다는 일행이 자리잡고 있다. 학교동기생 모임이라고 했다. 모두들 대단히 활달하였다. 한참 지나나 이야기도 농도 서로 주고받을 정도였다. 나중엔 술도 한 잔 사 준다. 여행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이렇게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게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우리도 이만하면 술과 안주가 딱 적절한데 c친구가 옆의 바비큐 요리 하는 걸 보더니 더 사러가자면서 자꾸 재촉한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나가는 차편도 없고 근처는 모두 문을 닫아버려서 아쉽게도 포기했다. 요 근래 내가 이렇게 대취한 적은 없었다. 모두들 방에 다시 모여 잠시 대화하다가 우리 방에 와서 잠을 청했다. 곧장 잠이 들었다. 대마도에서는 반드시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을 봐야 한다는데 하는 생각을 품고 잠이 들어서 그런지 새벽 2시 쯤 잠을 깼다.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아무래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좀 부스럭거리며 준비해서 밖으로 나왔다. 동숙한 다른 친구들도 좀 부스럭거리더니 다시 잠든다.
계속 잠은 오지 않고 밀려드는 망념 혹은 화두가 친구하잔다. 평생 가져가야 할 업(業). 한 댓 시간은 잔 것 같기도 하다. 새삼스레 다리와 엉치뼈가 저리고 당긴다. 여사 마당 플라스틱 간의 의자에 앉아서 명상과 묵상으로 마음을 다스려본다. 아니 조용히 달래 본다. 과연 별이 가득하다. 조용히 쏟아지는 것 같다. 모처럼 오리온 좌라고 하는 삼태성도 보았다. ‘民宿’ 간판만 외롭게 밤을 밝히고 있다. 거실로 올라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을 펼친다. 다른 투숙객이 지나가다가 날 보더니 멈칫 한다. 민망하다. 다시 방에 들었다.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낯선 섬에서의 새벽을 맞이한다. [2014. 9. 28.일. 대마도 기행 첫째 날 기록임]
20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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