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은 헤세처럼 도보 여행을 꿈꾼다, 그 나흘 동안의 여행
청솔고개
9월의 하순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해지는 하루하루다.
이 가을이 스스로 호올로 외롭게 더욱 그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요즘 가을날 해거름에 더 깊은 산속을 홀로 나 걸어들어 가듯이.
첫째 날,
깊어가는 가을날에는 먼 길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주 먼 길을.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 솔바람을 몰고 온다.
천년을 불던 댓바람도 데리고 온다.
낙우송 숲 바람은 하늘에서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다.
낙우송 군락지 아래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마음이 가라앉아진다.
평정심.
이 몸 건강에 대한 자신감, 이 마음 건강에 대한 자존감을 채워 넣는다.
시각이 가려지니 나의 청각이 더욱 맑아진다.
청청해진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하늘에서 별처럼 쏟아진다.
쏴아 하는 바람소리가 신비롭고 청량하다.
빗살로 아래로 꽂히는 가을 햇살 같다.
이 산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고 싶다.
밤새 걸어 들어가서 나오고 싶지 않다.
산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계곡에 앉아서 손과 얼굴, 목을 헹궜다.
추수(秋水)의 청량함이 폐부까지 찌른다.
둘째 날,
지금은 바닷가 해송 숲 속에 며칠째 텐트 몇 동이 있다.
왠지 철 지난 캠핑 족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저 안의 여행객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문득 행려병자(行旅病者)가 떠오른다.
그럼 여행병자(旅行病者)는?
글자 순서 하나 달리한 것인데,
그러니 여행병자가 심해지면 행려병자가 되는가.
오늘도 동해 바다 파도가 세다.
바다 물빛 보러 왔다가 나는 늘 하늘빛을 보게 된다.
구름 색을 보러 온다.
하늘의 구름이 더욱 찬연하다.
솟구치는 파도를 보다가 내 시선은 일망무제 수평선 너머 구름너울을 향한다.
푸른 구름이다.
청운(靑雲)이다.
셋째 날,
하늘이 아주 흐리다.
빗방울마저 흩뿌린다.
이런 하늘을 보면서 나는 뭘 해야 하나.
허공에다, 짙은 구름에다 편지 한 장 띄울거나.
바람이 휘돌아 불어온다.
그 바람 따라 길 떠나야 하리.
이제 나도 헤세의 도보여행 법을 배워가야 할 것 같다.
헤세의 가을날 도보여행은 유랑이다.
유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헤세는 여행을 시작할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이 앞선다고 말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고까지 했다.
헤세는 혼자 여행을 즐겼다.
헤세는 여행을 할 때는
혼자라는 사실에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십대 후반 우연히 헤세를 만나고부터
나도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견디고 있다.
넷째 날,
또 동해안 어느 해변 모래사장.
날은 더욱 흐리고 파도소리가 천둥소리다.
갈매기들이 옹기종기 한데 모여 폭풍을 피하고 있다.
다가가니 그만큼 물러난다. 날지는 않는다.
본능적으로 이 바람을 거스를 수 없음을 감지한다.
얼마 전 두 번의 태풍으로 곱던 해수욕장은 아직 폐허다.
48년 전 늦가을에 다달았던 동해 묵호해변을 잊을 수 없다.
해변은 해일 후 폐허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전장보다도 더 참담한 폐허.
진비마저 내리던 그 황량한 바닷가는 충격과 허망이었다.
여기를 잠시 둘러본다.
좌변기 두 개가 아직 그대로 모래와 뻘 속에 묻혀 있다.
그 위를 덮었던 간이 화장실의 지붕이 옆에 널브러져 있다.
멀리 해안선으로 뻗어 나온 이름 모를 곶, 그 마을에는 벌써 늦가을의 황량함이 덮여있다.
내 마음 스산하다.
울고 싶다.
여기서는 목 놓아 밤새 통곡해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으리라.
내 울음은 파도소리에 묻히고 또 묻히고.
바다낚시하려고 했는데 그 대신 더 큰 감성을 얻었다.
어부인지, 길 나그네인지 한 사람이 망연히 무너진 건물 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 앞에는 어디서인지 밀려 온 쓰레기 더미가 모래에 묻혀 있다.
성난 파도가 갯바위를 덮친다.
허연 갈키를 바람에 늘어뜨리며 포효하는 말떼다.
그 말떼들이 성나서 한꺼번에 뭍으로 돌진한다.
해풍에 전 댓잎들이 노릇노릇 잘 말라간다.
온갖 가을 잎들이 월파의 해수에, 몰아치는 해풍에 전다.
시들어 싯누렇다.
퍼석퍼석 말라간다.
큰 상처를 입었다.
가슴이 에인다.
이르는 데마다 해는 저무는데 그물의 그물코는 가지런히 걸려있다.
“헤르만 헤세에게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향기도 난다.
헤세는 소로처럼 자연 속으로 저물어가는 삶, 그리고 자발적인 은둔을 꿈꾸었다.”
어떤 작가이며 여행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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