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9

청솔고개 2020. 8. 21. 11:37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9

 

                                                               청솔고개

   2003. 8. 22. 금. [여덟째 날 전편]

   여전히 맑은 여름이다. 미국 국내 일정 마지막 새벽이 밝았다. 새벽 4시에 눈이 뜨였다. 아내도 아쉬운지 일찍이 깨서 서둔다. 그러면서 마지막 날 이 새벽에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천착해 보았다. 여행은 가장 완벽한 심신의 이완과 휴식을 가져다준다. 여행은 현실을 극복한 일종의 이상적인 상태이므로 현실과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덧없고 허허로워 보인다. 그래서 잊게 된다. 물리적, 심리적으로 불가역, 불가항력적 상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한다. 각종 업무, 부모, 자식, 형제 등의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에서 놓여난다. 따라서 순수한 여행은 모든 것을 비우고, 버리고 완벽한 무소유 상태를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초월상태이며 또한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태세이라고 볼 때, 딸의 진로에 대한 부모로의 책임과 의무, 우리 부모님에 대한 봉양, 개인적 건강, 업무 등에 대해서 그 기간 동안 집행 유예 상태를 만든 셈이다. 그래서 운동 중독증처럼 여행도 어느 정도 중독증이 있다. 심하면 현실 도피적 심리증상을 보인다. 그러니 덩달아 심리적 치료효과도 있다. 아침 일정을 여느 때보다 서둘러 앞좌석 차지하려고 했으나 역시 역부족이었다. 왜냐하면 미국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뉴욕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뉴욕 시내 맨해튼(Manhattan) 관광을 시작했다. 엊저녁 숙소였던 뉴저지 주 잉글우드( Inglewood) 지역은 뉴욕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다. 여기서 최초의 발견자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의 이름 딴 허드슨(Hudson) 강을 건너 시내로 진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처럼 버스로 다리를 건너가는 방법, 페리 선착장을 이용한 배를 타고 건너는 방법, 지하철, 개인 승용차, 심지어 스케이트보드 등등……. 바쁜 부자들은 자가용 헬기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출근한다나. 가이드는 한 채에 40만 불이나 하는 이곳의 아파트값에 대해서 말하다가 이야기가 옆길로 새어나가 여담으로 완전히 몰락한 한인 2세 뉴요커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직업상 좀 더 재미있게 여정을 가이드 하려고 한 줄은 알지만 솔직히 그런 이야기는 내게는 안 들은 것보다 외려 못한 것 같았다. 재벌 2세의 전형적인 몰락 패턴인 술-마약-도박-여자와 그대로 꿰맞춘 것처럼 얽히고설켜 있음을 알았다. 안갠지 연긴지 뿌연 기운이 가득한 한여름 아침 허드슨 강 건너 괴물 같은 마천루가 실루엣처럼 드러난다.

   그 옛날 초등 교과서에나 보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우뚝 서 있었다. 1931년에서 40년까지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정책의 하나로 건설된 이 터널의 공법상특색이 무척 흥미 있었다. 터널공법으로 모두 4개의 터널을 뚫었는데, 그 기법이 무척 기발하였다. T자로 된 관을 물속에 넣어 가라앉도록 하고 양쪽을 막아서 펌프로 물을 퍼내서 터널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환기를 위해서 팬 4개가 항상 돌아가면서 공기를 공급하고 있다. 이 밖에 이 강을 건너는 다리는 무려 50개나 된다고 했다. 링컨 터널을 통과해서 드디어 맨해튼에 접어들었다. 가이드의 뉴욕 설명도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거미줄 같이 얽힌 거리처럼 복잡하게 이어진다. 5번가 봉제공장거리고, 6번가 패션거리로 시작해서 문화, 금융, 패션, 외교 등의 세계 중심이라는 장광설은 내게 그렇게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당초에 처음 시공된 높은 건물들은 큰 화재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대책으로 임시비상구 설치를 법으로 소급 적용하여 건물 밖으로 철제 사다리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다리가 있는 건물은 모두 70년에서 100년 정도는 된다고 했다. 뉴욕의 명물로는 이 밖에 옐로우 캡이라고 불리는 뉴욕 택시가 있다. 흔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나오는 단어의 하나로 무척 유명한 명물이라고 했다. 여기서 여성의류 도매업종의 40%를 우리 한인들이 잡고 있다고 했다.

   뉴욕의 도로는 동서연결 60m단위로 된 짝수 번호의 스트리트(Street) 와 80m단위로 된 홀수 번호의 애비뉴(Avenue) 로 구분된다. 그런데 삼각형으로 된 블록 지역을 스퀘어(square)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였다. 타임스퀘어, 메디슨 스퀘어, 워싱턴 스퀘어 등이 많이 알려진 것이다. 그래서 모든 도로는 중간에서 끊어지지만 유일하게 안 끊어지는 도로가 있는데, 익히 듣던 뉴욕의 브로드웨이다. 따라서 뉴욕의 모든 거리는 원 웨이(one-way) 즉 일방통행인데 단 하나의 예외가 뉴욕대학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뉴욕은 도시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어지간한 역사만 있어도 건축문화재로 지정 등록되는데, 미국 국기가 걸어진 건물은 지정된 문화재다. 그래서 심지어 역사가 좀 된 한 극장 건물을 40m나 밀어 옮겨서 보존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오 헨리(O. Henry]), 유진오닐(Eugene Gladstone O'Neill) 등 가난한 작가와 예술가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하우스 톤의 남쪽 거리[South of Houston]를 줄여서 부르는 소호(SoHo) 거리 등도 한 번 직접 걸어보았으면 좋으련만 일정 상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대략 위치와 설명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나도 뉴요커들 사이에서 며칠 묵으면서 그 기분을 느껴보아도 좋으련만. 여기 뉴욕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초기 철도 노동자로 이민 와서 대륙 횡단 동서철도 공사에 투입되어서 일하다가 그야말로 철도 침목(버팀목)만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은 20만에서 40만 정도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브로드웨이(Broadway) 를 타고 맞은편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훑어보면서 유엔본부 건물은 그냥 차에서 쳐다보았다. 무척 아쉬웠다. 여기까지 와서 세계 질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심을 들여다보고 싶었는데 일정상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즉 지난 9.11테러로 파괴된 세계무역 센터로 가는 도중에 근처 한 성당의 별명이 ‘기적의 성당(Out of Dust)’으로 불린 성당 옆을 거쳐 갔다. 9.11테러로 세계무역 센터 중심에서 반경 수백 미터가 직간접 파괴되었는데, 이 성당만큼은 먼지하나 뒤집어쓰지 않은 기적을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드디어 비극의 현장에 도착했다. 역사는 이를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에 대한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테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본래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이나 피폭 중심지를 뜻하는 군사용어다. 여기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제로[영,零] 상태였다. 블랙홀이라고도 할까. 아무것도 없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주변의 건물도 유리창 파손, 금간 것, 건물의 가장자리가 떨어져 나간 것 등 거의 대부분 크고 작게 파괴된 것뿐이었다. 철책 등 보호책으로 둘러싸인 현장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죽음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한 각종 추모 기념물, 제단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이 처참한 현장을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을 통해서 지겹도록 보아왔지만 이렇게 현장을 목격하고 나니, 일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거대한 미국의 중심이 저항세력으로부터 무방비 상태로 공격받은 일은 분명 가증스러운 테러이고 학살 행위이지만 그 원인부터 살펴보면 아메리카 합중국이 단순한 피해자로 치부(致簿)되는 것은 불공평한 결론인 것 같다. 역사의 대부분은 이분법으로, 혹은 흑백논리로 기록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나는 현장을 열심히 카메라로 기록에 남겼다. 단순한 기념촬영 이상 중대한 현장 기록이라는 철저한 역사 인식이 필요하리라. 그냥 스쳐가면서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떠나가는 일회성 볼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검은 바탕에 기록된 희생자 명부는 끝없이 이어졌다. 미국인들의 충격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 제공 측면에서 볼 때 ‘인과응보(因果應報), 뿌린 대로 거둔다.’의 세계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 강행(强行), 이로써 획득될 수 있는 엄청난 반대급부(反對給付)를 과연 그들은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어쨌든 ‘역사의 정의는 강자의 것이다’라는 논리가 정당화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 역사의 정의(正義), 대의(大義), 발전(發展), 진보(進步)라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 단어이란 말이던가? 나의 심중은 제법 복잡하였다. 

                                                                             2020.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