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8

청솔고개 2020. 8. 21. 10:35

뉴욕의 늦여름 10일간의 작별/미 동부 및 캐나다 동부 기행보고서 8

 

                                                      청솔고개

   2003. 8. 21. 목. [일곱째 날]

   계속 날씨 맑음 중이다. 숙박지 엔도버에 있는 호텔 WYNDHAM ANDOVER에서 8시 8분에 보스턴으로 출발하였다. 40분쯤 걸린다고 했다. 캠브리지(Cambridge)시의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을 찾았다.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가 신학대학으로 출발하였다고 하였다. 이곳 동부지역은 청교도들이 실력을 떨치는 곳으로 보스턴(Boston)은 미 독립운동의 발화점이었던 1770년 보스턴대학살이라는 역사를 바꾸는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미국의 첫째(First)’라는 것은 다 있을 정도라는 사실이 말해 준다. 최초의 공원, 우체국, 도서관, 지도, 등대 등도 있다. 캠브리지 시에 있는 하버드교정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원시림 같은 거목들, 잘 다듬어진 잔디밭은 그동안 화면을 통해서 많이 보았었는데, 지금 이렇게 직접 그 위를 걷고 있다. 여기서 미국 정신이나 지성, 양심, 자유를 어떻게 하면 좀 알 수 있을까 고심이 된다. 설립자라는 하버드 목사동상 앞에서 여행단 전원의 기념 촬영이 있었다. 동상의 발이 반질반질 닳아있었다. 우리 여행단도 동상의 발을 만지면서 촬영한다고 정신이 없다. 미국 지도자의 절반이 여기서 나온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할 것 같다. 이른바 미국정신이 잉태하는 곳이다. 실내에 들어가 보았다. 안내문, 벽보, 동아리 전달사항 등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하버드 학생들의 활발한 학교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계단강의실에서 ㅂㅇㅇ씨가 좌장 격으로 임시 교수로 즉석 강의를 하였다. 그는 먹는 물 연구 및 관리 관련 일을 하는 금년 68세다. 바로 임시 반장이 뽑히고 임시교수님에게 ‘차렷!, 경례!’로 하버드식이 아닌 한국식 학생의 예를 표했다. 그의 강의는 이제 우리는 만 리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인연설로 시작됐다. 이어서 그 만 리는 백두산에서 제주도 3천리를 3번 왕복하고도 1천리가 남는 거리이며 서울 양천구는 양천리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다섯 배 되는 거리를 함께 여행했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소중한 만남과 그 인연에 대한 것이었다.

   법대 건물은 맞은 편 깊숙한 곳에 있고 공부벌레들이 가장 많이 기생하는 도서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곳을 우리 첫째, 둘째와 함께 왔어야하는데’하는 생각은 아내나 나나 같았을 거다. 하버드의 유서 깊은 정문을 나와서 입구에 있는 하버드 구내매점에 들어가서 그 유명하다는 하버드의 문양과 상징이 새겨져있는 옷가지나 유니폼을 둘러보았다. 하버드가 아무리 명문이라 하더라도 입구 매점마저 이렇게 성황을 이룰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긴 팔, 짧은 팔 티셔츠를 기꺼이 샀다. 비로소 하버드의 중심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전차의 전선들의 거미줄처럼 빼곡히 엮어져 있는 보스턴 거리를 질주하였다.

   이어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캠퍼스로 접어들었다. 186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원래 조선, 항공 등 첨단 공학의 산실이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방계학문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고 했다. 경영학과라든지 교육학 분야 등을 통해서 특기와 리더십, 자발적인 학습 방법을 최초로 시도한 신학문의 산실이기도 했다. 복도를 거닐면서 그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치장 없이 소박하게 꾸며진 연구실들의 문은 활짝 많이 열려져 있었고 교수들은 무척 자유롭고 진지한 옷차림과 분위기로 집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상적이었다. 복도에는 방문객들이 심심찮게 다니고 있는 데도 개의치 않고 연구와 강의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여기는 세계 최초로 기계식 컴퓨터 하드웨어가 개발된 과학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2만 8천명의 재학생들이 운집한 대학촌답지 않게 붐비지 않는다. 그렇게 여유가 있어 보이는 것은 우리처럼 캠퍼스가 하나로 묶여지지 않아서이다. 밀집되어 있지 않고 도시 전체에 대학 건물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라 했다. 교수연구실 유리창에는 교수의 전공과 이름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해양 조선연구소를 둘러보니 우리의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석조 건물의 높은 기둥이 받쳐진 중앙 현관에는 역대 졸업생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마치 공원처럼 꾸며진 잔디밭과 수목들이 8월말의 양광에 익어가고 있었다.

   여기 MIT 캠퍼스. 우리가 비로소 세계의 공학·사회과학·물리학·경영학 등 연구의 중심에 서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대학은 최근 들어서는 인문, 사회과학계 학부의 육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미국 학생들은 여름의 서머스쿨을 이수하는데 복수 전공 공부하는 기간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법률과 의학, 철학과 생물학 등 학문 간의 통합, 융합 연구는 자기 전공분야 학문의 완성 및 경쟁력 제고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미국 대학도 서열이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 네임 밸류처럼 모든 면에서 1류는 아니라고 했다. 의대로는 존 홉킨스대학, 대중음악으로는 버클리대학식이란다. 하버드와 보스턴의 조정 경기로 유명한 찰스 강(Charles River)에는 몇몇 배들이 한가로이 그림처럼 떠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인즉, 미국에서는 매년 4월 15일에 소득세 납부를 마감한 결과 미국의 3대 부자 주가 바로 뉴저지 주, 코너티컷(Connecticut) 주, 매사추세츠 주 순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주 보스턴은 미국 최초의 공원지역으로 지정되었기에 도심에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짧은 미국 역사상 그래도 상당한 문화와 역사가 축적된 곳이다. 예를 들어 눈싸움하던 이 곳 아이들의 눈 뭉치가 영국군 병사들을 맞히는 바람에 촉발된 사건이 바로 1770년 보스턴 대학살 사건이었으며 그 때 5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운동의 도화선으로 비화된 데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밖에 1880년 이래 지속되어온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한국인들의 용기와 기상을 드높인 쾌거로 기록되는 바람에 이 도시의 이름이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를 태운 초대형 버스는 미국 최초라는 수식이 붙은 최초의 성공회 영국교회, 올드(old) 시티홀 등 구 시가지를 곡예를 하듯 천천히 빠져나간다. 차 정체가 심했다. 보스턴을 대표하는 복합 쇼핑센터인 퀸시 마켓(Quincy Market) 주변에는 우리의 도심 풍경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노점상, 행상, 가게, 식물원, 꽃집 등이 잔뜩 펼쳐져 있다. 미국 상류층의 소비행태를 가늠할 수 있는 퀸시 마켓이 유서 깊다고 하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둘러보고 나왔다.

   그것보다도 섭씨 30도(화씨는 91도)가 넘는 뙤약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 공연에 빠져 있는 아이들과 이를 구경하고 있는 방문객의 모습이 더 이채롭다. 별로 유별나거나 색다른 것도 아닌데 모두들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 광장 공연을 즐기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이 더 인상 적 이었다. 퍼포먼스 하는 연기자는 땀을 물 흐르듯 흘리면서 그 코믹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으로 연기에 대해 뜨거운 박수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서 이들의 문화와 그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저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한 이 퍼포먼스를 진지하게 감상하는 법을 나도 덩달아 배우기라도 할 듯이 퍼져 앉아서 넋 놓고 빠져들어 가는 꼬마 관객들 옆에서 동참하였다. 한마디로 공연자들 보는 것보다 그걸 바라보는 관객이 더 흥미로웠다. 거리는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즐비하고 특히 군데군데마다 넓게 자라잡고 있는 도심 공원 같은 공동묘지들의 모습이 너무 특이하였다. 국가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일천한 미국인들은 그들의 역사보존 정신이 지나칠 정도라고 하는데 그건 아무리 지나쳐도 괜찮은 것 아닌가. 도심의 묘지를 생각하니 내 우리 대한민국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도심이나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수천 수 만여 기가 넘는 선인들의 무덤, 이른바 고분의 천지다. 그래서 천년도 넘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한다 했는데 이런 점에서 여기와 통하는구나하고. 거리의 차이나타운을 지나가면서 미국 아파트의 외관을 볼 수 있었다. 높아야 5층 정도의 빌라 형이었는데 보기보다 값이 꽤나간다고 했다. 마더스처치와 자주 들어 귀에 익은 크리스챤사이언스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 지 신문사 본사 등을 거쳐 갔다. 시내 한․일 음식점(‘재패니즈코리안 레스토랑’으로 표기) 한 군데에 오전 12시 40에 도착, 여기서 김치, 미역국, 통닭, 무생채 ,콩나물, 숙주나물, 김치찌개 등으로 포식했다. 오후 1시40분까지 느긋한 마음으로 모처럼 한국의 맛을 만끽했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위해 만든 세계 굴지의 1947년 제 49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피니시 라인(경승선)을 거쳐 간다. 서윤복, 남승룡, 손기정 세 분의 마라토너들이 출전하여서 우승까지 한 한민족의 자긍심을 한껏 드높인 현장이다. 나라가 가난해서 임원진 한 사람 동행하지 못하고 손기정선수가 단장, 감독, 선수 3역을 감당했었다고 한다. 경기 처음에는 시차, 음식 등 최악의 컨디션이어서 거의 포기했었는데, 10년 선배인 손기정선수가 뒤따라오면서 ‘이놈아 뛰어야 한다!’라고 고함치면서 독려하는 바람에 HEART BREAK HILL(죽음의 언덕)이라는 별명이 붙은 뉴턴 힐이라는 난코스를 극복하고 서윤복 선수가 2:25:39의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까지 한 비화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1947년 제51회 보스턴마라톤 때 이야기다. 그때 우리 선수 프로필마저 제출하지 못해서 45,000 관중들은 1위로 들어오는 한국선수가 어느 나라 국적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 코스를 까마득한 후배 우리의 이봉주 선수가 2001년 106회 대회에서 또다시 우승하였으니 그 감동은 배가되었다.

   이 길로 로드아일랜드 (Rhode Island)주 뉴포트(Newport)로 향한다. 아메리카 북동부 해안 길은 늦여름 8월의 열기로 녹아내리는 듯하다. 그림처럼 빼곡히 해안이나 만마다 떠있는 요트군단, 검푸른 삼림, 그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맨션 등은 아메리카 합중국의 풍요와 여유 그 자체인 듯하다. 차들이 질주하는 해안 도로 역시 맨션과 같이 똑 같은 것은 하나도 없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대서양이 바라보이는 해안 도시 맨션투어는 가장 미국적인 풍요에 대한 눈요깃감이라 할까? 해안절경에 중국풍 정자까지 갖춘 궁전 같은 마블하우스는 루이14세풍의 호화생활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도저히 개인의 주택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미국의 상류층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열 아름도 더되어 봄직한 거목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이러한 저택들이 버티고 있는 이 곳 역시 아메리카합중국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서둘러 둘러보고 4시 45분에 뉴저지 (New Jersey) 주 북동 지역 포트리 (Fort Lee)의 숙소로 출발하였다. 이제 나의 시각과 두뇌가 너무 많은 용량 저장으로 지친 듯, 석양의 미동북부해안 도로 속으로 빠져들 듯 졸음이 쏟아진다.

   나는 이번 여행 기간 중 읽고 있는 <솔로우 일기>에 나오는 콩코드 강과 허드슨 강의 위치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나중에 가리켜 주겠다고 했다. 내가 잠든 사이에 가이드는 허드슨 강을 설명했다고 나중에 아내가 귀띔해 주었다. 나중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사방은 어둠에 묻힌 후였다. 숙소 가는 도중 한식당에서 찜, 생선찌개, 콩나물로 식사를 시작할 때는 벌써 저녁 9시 30분이었다. 나는 꿈속에서 허드슨 강을 만나보았다. 저녁 10시 30분에 도착한 숙소는 뉴욕 인근 뉴저지 주 포트 리 지역 RADISSON 호텔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지만 노독에 그냥 잠에 빠져들었다.   2020.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