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12일(로마를 떠나며)

청솔고개 2020. 12. 7. 05:32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길 따라’ 제12일(로마를 떠나며)

                                                                                  청솔고개

   기내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그리던 대한민국의 김포공항에 연착륙하였다. 한국시간으로 16:55였다. 태양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가 동쪽으로 다시 회귀한다.

   19:50 서울발 대구행 KE1519 국내선으로 대구에 안착하니 20:40, 12일이라는 내게는 좀 긴 여정을 마치고, 먼 길을 돌아서 고향으로의 귀환은 마치 몽롱한 꿈결 같다. 시간이 정지하는 듯했다. 열흘 남짓 여행에도 이런 감흥을 준다면 몇 년씩이나 아니면 십몇 년이나 걸리던 옛 사람들의 기나긴 유람(遊覽), 주유천하(周遊天下)후의 감흥은 또 어떠할지. 언젠가 나도 만사를 제쳐 놓고 한 2,3년 훠이훠이 밤하늘의 별들과 풀잎을 적시는 이슬을 벗 삼아 행려(行旅)하고 싶다.

   아 , 이 아름다운 날들이여 언제 다시 오려나!

 

   아래 [   ]은 괴테의 기록이다.

   [12월의 편지

   12월 7일 로마

   이번 주는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습니다. 시작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아야 하고, 모든 시대를 이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니까요.

   12월 8일 로마

   예술 속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확실한 것, 교훈적인 것, 그리고 대대로 전해오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정신이라고 말하는) 정신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기술상의 장점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이 조그만 요령을 알아낸다면, 많은 것이 경이롭게 보이는 놀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고귀한 것이든 비속한 것이든, 로마 이외의 그 어느 곳에서도 이처럼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2월 21일

   그림을 그리고 미술 공부를 하는 것이 제 문학적 능력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써야 할 것은 적지만, 그려야 할 것은 많기 때문입니다.

   12월 25일

   마이어는 제게 우선 세부적인 것, 개개 형식의 특징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해주었고 참된 제작으로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그는 적은 것에도 만족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늘,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을 적어놓고 싶어집니다. 그의 말은 그렇듯 분명하고 정당하며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게 어떤 인간도 줄 수 없었던 것을 줍니다. 그와 헤어진다면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해줄 수 없을 겁니다.

   자신의 길을 가며 어슬렁거리거나 이리저리 헤메는 사람, 나아가 자신을 심부름꾼이나 나그네로 자처하려는 모든 사람에 대해 저는 냉혹하고 또한 참지를 못합니다. 농담과 해학으로 몰아세워서 결국 그들의 삶을 바꾸게 하거나 아니면 제 곁을 떠나게 합니다. 설익은 사람, 삐딱하게 구는 사람은 사정 볼 것 없이 당장 키질해서 가려냅니다.

   12월의 보고

   사람들은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판단을 이야기한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들의 특별한 재능, 선배나 스승, 장소와 시간, 후원자와 주문자에 의해 갖가지로 제약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 않고서 말이다. 순수한 평가를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은 어느 것 하나도 고려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칭찬과 비난, 긍정과 부정의 일그러진 혼합물이며, 그로 인해 문제시되는 대상의 모든 독특한 가치가 완전히 무효화되는 것이다.

   위대하기 그지없는 것, 화려하기 그지없는 것이 소멸되는 것은 시간성에, 그리고 상호간에 무조건 영향을 끼치는 도덕적, 물리적 요소의 성질에 기인한다.

   베드로 성당은 정말로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의 그 어떤 신전보다 더 웅대하고 비범하다. 2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파괴되지 않고 우리 눈앞에 서 있으며, 동시에 고도의 문화를 재현해 보여주었다.

예술적 취향의 변모, 단순한 위대성의 추구, 복잡한 축소성으로의 회귀 등과 같은 그 모든 것이 삶과 운동을 암시해주었다. 예술사와 인류사가 동시성을 갖고 우리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원학자 모리츠

   “필요하고 유익한 일에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불필요하고 무익한 일에 몰두하기를 즐긴다.”

모든 언어의 동질성은 관념의 일치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그것에 따라 창조하는 능력이 각각의 종족과 유기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내적인 본능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외적인 동기로 인해 극히 제한된 수의 모음과 자음이 올바르든 그르든 간에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글자란 자의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고, 발음되는 것을 표현하는 모든 내적 감각의 부위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알파벳에 따라 각 언어들을 판별할 수가 있다. 이때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민족이 내적 감각에 따라 자기표현을 하려 한다는 것, 그러나 자의와 우연에 의해 정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1788년 1월 5일 로마

   사물의 본질과 그 관계를 통찰하여 그 풍요의 심연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습니다. 항상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배우는 동안 제 마음 속에 그러한 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혼자서 공부를 하자니 공부하는 힘과 그것을 소화해내는 힘이 하나가 되고 발전은 다소 적고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1월 10일

   동일한 상황 하에서 제 저술을 끝낼 양이면, 당장은 내키지 않지만 <타소>를 그리고 <파우스트>를 쓰기 위해 올해에는 악마에게 몸을 팔아 공주와의 사랑에라도 빠져야겠습니다.

 

   1월의 보고

   시인에게 사랑이란 필요불가결한 것이기에 이들은 필연적으로 초세속적이며 일종의 플라토닉한 동경에 몰입했고, 그들의 시가 존경받고 독특한 성격을 갖게 해주는 우의적인 것과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위대한 선구자인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족적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사육제

   로마의 사육제는 본래 국민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마련한 축제이다. 나라에서는 이 축제를 위해 별다른 설비도 하지 않고 경비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환희에 찬 군중이 스스로 참여한 것이기에 경찰도 엄격한 통제를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다만 원한다면 누구나 미쳐 날뛰어도 좋다는 묵시적인 허락만이 주어질 뿐이다. 주먹질과 칼부림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것이 허용된다.

   신분상의 차이도 잠시 사라진 듯, 모두가 서로 가까워지고 누구나 만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서로간의 무례함이나 자유분방함은 전체적인 쾌활한 분위기로 인해 균형을 유지한다.

   날이 갈수록 사육제에 대한 기대가 강력해지고 고조되다가, 정오가 막 지난 다음 마침내 카피톨리노 성의 종이 울리면서 자유로운 하늘 아래서 미쳐 날뛰어도 좋다는 허락이 내려지는 것이다. 일 년 내내 조심스레 실수를 경계하던 신중한 로마인들도 이 순간에는 진지함과 신중함을 한꺼번에 집어 던진다.

수많은 의자들은 실내에 앉은 듯한 기분을 더해주고 다정한 하늘이 있어서 지붕이 없다는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나아가 그 길고 비좁고 혼잡하던 거리는 인생행로를 상기시켜준다. 구경꾼이든 참가자든, 혹은 가면을 쓰고 혹은 그대로 발코니나 관람석에서 자신의 앞과 옆에 놓여 있는 좁은 공간만을 바라본다. 걷는다기보다는 밀리면서, 자의로 멈춘다기보다는 정지당하면서 더 낫고 더 즐거운 장소에 도달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는 다시 궁지에 몰려 결국 그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계속해도 된다면, 이런 것도 언급하고 싶다. 그지없이 생생하던 최상의 기쁨도, 옆을 스쳐가는 말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 마음을 흔들어놓고는 우리의 마음속에 별다른 흔적도 남겨놓지 않고 사라져버린다는 것,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광란의 도취경 속에서만 누릴 수 있다는 것, 최대의 쾌락도 위험에 아주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그 두렵고 달콤한 느낌을 탐욕적으로 향유할 때에야 비로소 최대의 자극을 준다는 것 등을 말이다.

   삶이란 대체로 로마의 사육제마냥 한이 없는 것이므로 우리는 아직은 다 향유하지 않은 채로, 아니 깊이 생각하는 자세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걱정을 모르는 이 가장인물들을 통해서, 순간적이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모든 삶의 향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2월 22일 로마

   제가 원래 예술을 위해 태어났으며 아직 일할 수 있는 10년 간 이 재능을 십분 발휘해 무언가 걸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제겐 날마다 더욱 또렷하게 부각되어 옵니다. 젊음의 열기야말로 큰 연구 없이도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니까요.

 

   2월의 보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겐 수많은 대상이 다 예술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터인즉슨, 이 축제의 광란과 황당무계함 속에서조차 나의 예술적 안목은 도움을 받았다.

 

   3월 14일 로마

   이렇듯 유리한 상황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돛대가 없거나 아니면 조타수가 엉터리일 겁니다. 미술품을 개관하는 데 있어서 제게 필요한 것은 주의력과 근면성을 가지고 한 부분 한 부분으로 옮겨가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발전해나간다는 것은 유쾌한 일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는 것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사람이 세 명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을 텐데, 그들 곁을 떠나자니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로마에서 처음으로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제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끼며 행복했고, 이성적이 된 것입니다. 이들 세 사람은 그런 인간으로서의 저를 여러 가지 의미로 알고, 소유하고, 즐겼습니다.

 

   3월 22일

   큰 이별에는 언제나 광기의 싹이 배태되어 있는 법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신중히 배태하여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4월의 보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인상은, 그것이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느낌과 견해를 말로 표현하길 원한다. 그거나 그러기 위해서는 분류하고 선별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것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국 감상하고 즐기면서 감탄하는 태도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모든 미술 작품의 영향 가운데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그것들이 우리를 그 시대, 그 제작의 상황으로 데려다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연한 기회에 털어놓은 놀라운 마지막 고백이자, 그지없이 순수하고 부드러운 서로간의 애정이 내적 충동에 의해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간결한 고백이었다. 때문에 그것은 나의 감각과 마음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1997.12.3.(월, 제12일/12일)]

                                                                  2020.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