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학 활동 회상 3
청솔고개
드디어 꿈동산의 품을 내가 떠날 날이 다가왔습니다. 내가 담임한 1학년 아이들은 환송연을 한다고 정든 1학년 교실에 음료수, 과자, 술을 준비하여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한 푼이 아쉬운 그들인데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모인 아이들의 대부분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침통한 분위기를 흥겹게 바꿔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습니다. ‘스승의 노래’ 합창으로 시작해서 다채롭게 춤도 추고 나의 ‘이별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교실 문에서 나는 떠나가는 아이들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 주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꿋꿋이 지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내가 이제 정말 꿈동산을 떠나는 날인데 그날도 13명의 학생들이 출발역까지 전송해 주었습니다. 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나는 일부러 아이들의 침통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려고 장난도 걸었습니다. 하나하나 손을 잡아 주면서 이별의 슬픔을 삼켰습니다.
차가 떠나려 하자 아이들은 작은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서 차창 너머로 마주보면서 손을 흔들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생애에 맨 처음으로 겪는 헤어짐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는 꿈동산 3년간의 숱한 추억이 한 폭의 영상처럼 떠올랐습니다. 추운 2월 토요일 저녁에만 치르던 울음바다의 야학 졸업식. 숱한 한과 사랑과 인정과 뜨거운 감동으로 용해된 꿈동산만이 가질 수 있는 야간 졸업식. 73년 10월 15일의 꿈동산 개교 25주년 기념 종합예술제 준비. 특히 기념연극제의 소품을 맡아서 쩔쩔맸던 일하며, 역경을 이기고 대학 학생회관에서 성공적으로 예술제를 끝마쳤을 때의 그 벅찬 감동, 그래서 그날 저녁 꿈동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촉촉이 젖은 가을비가 유난히 인상 깊었던 추억하며……. 애쓴 보람으로 많은 학생들이 검정고시에 통과되어 일반 정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느꼈던 보람. 73년도 2학년 수학여행을 안내했을 때 마침 경주 신라문화제를 맞이하여 여관을 얻지 못하고 헤매던 일. 불국사에서 부산행 기차를 놓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일. 74년 봄․가을 소풍의 기억. 초등학교를 갓 졸업해온 어리디 어린 모습을 띤 어린 1학년의 모습 모습들. 이제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고귀한 추억일 뿐. 마냥 아쉽기만 하였습니다.
75년 3월 1일, 나는 경북 지방의 한 고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습니다. 병아리 교사로서 현직 교사생활의 실상은 삭막하고 비정하였습니다. 사회 첫출발한다는 가슴 벅참보다는 지난 3년간의 야학 생활에 대한 그리움으로 스물셋 젊은 가슴은 밤마다 울먹거릴 뿐이었습니다. 꿈동산의 어린 제자들에게 밤마다 편지를 썼습니다. 그때 나는 놀랐습니다. 가장 먼저 회신을 보내오고 오래 연락이 끊어지지 않던 학생들이 바로 나를 그렇게 회피하던 보호 시설에서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땅에 자란 한 그루 나무처럼 자란 그들이 가슴을 열고 몽당연필로 또박또박 깨알같이 써 보낸 사연을 보고는 그 야학의 순수정신의 결실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내가 야학 3년 활동의 세월을 통해 체득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 한 시절을 참으로 의미 깊게 해 주었습니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 나에게 새로운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내가 남을 조금이라도 도와준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위로감, 봉사심, 시혜의식 등을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순진무구한 어린 영혼들과의 고귀한 해후를 통해 내가 다시 소생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학활동은 내게 심신의 구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는 결코 종교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순수한 인간의 만남, 영혼의 만남이라는 의미에서였습니다. 내 생애에서 이것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소중한 하나의 세계를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꿈동산은 내게는 운명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어쩌다 만난 꿈동산가족을 보면 구면이든 생면부지든 가슴과 가슴으로 통하는 뜨거운 그 무엇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 꿈동산은 그 역사를 영광스럽게 마감하고, 비록 문은 닫았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열려 있고 또 살아 있습니다.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나의 생애 한 뜨락에서 그 꿈동산을 체험하고 그로 인연한 숱한 얼굴들이 이 땅 어느 곳엔가에서 가슴에 파묻은 그 정신을 꽃피우기 위해, 열매 맺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꿈동산은 영원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 글은 ‘야학 50년사’에 실은 글을 일부 정리한 것임] 2021.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