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토론이다 1/ 토론의 장은 주제에 대한 패널들의 찬반 의견과 주장을 그 근거를 바탕으로 경청하는 과정이고 국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여론을 주도하여 의결기관의 의사 결정 ..
청솔고개2021. 3. 7. 12:55
이제는 토론이다 1
청솔고개
우리 사회에는 제대로 된 토론이 있는가. 토론에 대해서 우리들은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나에게는 늘 큰 화두이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모든 갈등과 문제는 토론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백 년 동안 진행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의 ESG(환경보호, 사회공헌, 윤리경영) 평가에서는 다른 주요 11개국과 함께 1등급을 받은 게 참으로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5등급까지 나누어 평가하고 있는데 미국, 영국, 호주가 2등급, 일본, 중국, 그리스가 3등급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우리의 위상과 잠재력을 가늠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이는 미래 성장 환경 구축이며 그 동력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저변을 확보한 것이다.
나는 여기에 토론 문화에 대한 인식, 연습, 훈련을 더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이에 더해 호랑이가 날개까지 다는 형국이 되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혈질이고 신속함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환경이나 첨단 기술에 최고급 안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생태환경을 광범위한 테스트 베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유행을 잘 타는 화장품이나 자주 바뀌는 전자제품, 각종 디자인 등에서는 우리도 모르게 형성된 조급하고 까탈스러운 성향이 그런 걸 구축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우리의 경제주체인 기업은 대부분의 지표(指標)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하고 있지만 정치는 아직도 한참 멀었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낙후한 것이 정치이며, 그 신뢰감 역시 언론과 더불어 가장 낮게 평가되고 있다. 열린 토론의 장의 마련으로써 정치와 언론의 발전과 그 신뢰성 회복을 기해야 할 것이다.
토론(討論)이란 디베이트(debate)로 새겨지며 넓은 의미로 토의, 의논 등을 다 포함한다. 이에 비해 토의(討議)는 디스커션(discussion)으로 새겨지며 의견의 대립을 전제로 하는 토론과는 달리 그 대립된 의견을 전제로 문제에 대한 해답, 해결책을 찾는 과정의 말하기다. 다시 말하면 토론의 장은 주제에 대한 패널들의 찬반 의견과 주장을 그 근거를 바탕으로 경청하는 과정이고 그 청중인 국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여론을 주도하여 최종적으로 각종 의결기관의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30년 전만하더라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가부장적 관념, 개발독재의 경제원리, 과업위주형 경영방식의 팽배로 토론문화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 때만해도 토론은 한가한 집단이나 저지르는 시간 낭비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개발의 효율성만 따졌기 때문에 부르도져 운행 같은 밀어붙이는 식의 추진력이 시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 세대가 지났다. 젊은 세대가 주역으로 자리 잡고부터는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의도’로 통칭되는, 우리 정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 의사 결정 과정을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물론 각 소속 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다소 센 발언은 정치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알맹이는 없고 말의 성찬(盛饌)으로 포장된, 도를 넘는 지나친 정치공세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기피만 부추길 뿐이다. 수위(水位)가 높을수록, 도(度)를 한참 넘을수록 그 발언은 주목 받게 되고 발언의 장본인은 악명(惡名)이든 허명(虛名)이든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이런 노이즈마켓은 이제 정치공학 측면에서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제한적(制限的)이고 결국 선동적(煽動的)이라는 평가를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아직도 저라나, 또 저러나, 한참 정치후진국이군.” 하는 부정적인 인식만 심어줄 뿐이다. 오죽하면 지도층 불신의 첫째가 정치권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썼을까. 말의 내용보다 어투 등 형식 중시……. 그래서 많은 시청자에게 정치혐오증(政治嫌惡症)이나 안겨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외면해버린다. 물론 이런 정치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과 혐오도 국민 된 도리로서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민은 정치를 감시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말꼬리 잡기다. 그 수준의 저급함과 유치함이 실망을 넘어 분노에 가까울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나의 부정적이고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소모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도 있다. 2021.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