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걷기 시작했을 때는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차량은 별로 없었다.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즐거움을 나는 벌써 맛보고 있었다. 여기서 10 내지 20킬로미터만 가면 아라라트(Ararat) 산을 보게 될 것이다. 중세에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신성한 산을 보며 성호를 긋곤 했다. ~내 앞으로는 해발 2500미터에 달하는 고개를 향해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장 속에서 미친 듯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뱃속의 전쟁을 잊기 위해서 나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설사가 점점 더 극심해져서, 결국 나는 배낭과 엉망이 된 속을 벗어놓았다. 이만큼 격렬한 설사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도로는 여전히 오르막길이었고 나는 점점 걷기 힘들었다. 극심한 두통이 머리를 짓눌렀다. 두통은 더욱 뜨거워진 내양 때문이었다. 모자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총 6, 7킬로미터를 걸어서 고개를 내려왔고, 설사를 해결하기 위해 열두 번 가량은 멈춰야만 했다. 두통은 더운 날씨에도 금세 나를 덜덜 떨게 만드는 열이 난다는 신호였다.”
위의 인용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 아나톨리아 횡단’에서 395~396쪽 중 부분이다.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는 프랑스의 언론인으로서 30년간 「파리 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에서 활동하였다. 은퇴 후인 1999년 그는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킬로미터라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4년 동안에 걸쳐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
위의 인용은 그 1단계로 이스탄불에서 이란의 테헤란까지의 기록이며, 이어서 ‘나는 걷는다 2 머나먼 사마르 칸트’, ‘나는 걷는다 3 스텝에 부는 바람’ 등 모두 3권의 방대한 기록이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의 기록이다.
내가 우연히 자주 드나들던 서점에서 이 책 1을 발견하고 구입해서 밤을 새워 읽기 시작했다. 1권은 446쪽으로 돼 있는데 2009년 10. 10.(토) 자정에 독파(讀破)했다고 맨 뒤쪽에 기록돼 있다. 나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2, 3권을 찾아서 모두 읽었다. 나는 이 책에서 충격과 감동, 영감과 희망을 보았다.
저자가 이 여행을 처음 출발한 것은 예순 두 살의 나이였다. 당시 나의 나이보다 4살이나 많은 나이다. 위의 인용에서 보다시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도 왜 그는 걷고 또 걸었을까? 내가 이 책을 만났을 그 당시 나는 마음을 다쳐서 아주 힘 들어 했던 시기였다. 나는 어디 한 군데라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거의 초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렸는데 뜻밖에도 이 책에서 큰 도움을 얻게 됐다.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음을 통해서 치유를 받은 셈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자처럼 걸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였다.
40여 일 전 9시간 가까이 진행된 나의 척추관협착증 대 수술 후 나는 지금 재활훈련에 나의 여력을 모두 쏟아 붓고 있다. 방안에서라도 하루에 2시간 걷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있고 가까운 시내 볼일은 모두 걸어서 처리하고 있다. 담당의사는 수술 후 4개월 동안은 보조기를 철저히 착용하고 차 운전, 자전거 타기 등은 삼가라고 권유에 따른 점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제 나는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통해서 내가 인간(人間, 휴먼, human)임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립(直立)하는 인간(人間)' , '호모 일렉투스 Homo erectus'임을 더욱 증명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신념은 위의 ‘나는 걷는다 1, 2, 3’에서 영향받은 바 크다. 2022.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