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2. 6. 2. 토. 맑음
저녁답에 큰집에 들러서 쌀을 담아서 동생한테 갔다. 큰집 부모님들께서는 잘 계셨다 어머님도 얼굴이 괜찮으셨다. 음료수와 초코파이도 같이 사 갔다. 가뜩이난 좁찔한 동생 얼굴이 농사일로 타서 더욱 작아 보인다. 그래도 별말 없이 그냥 버텨 주는 게 참 대견하고 고맙다. 호박구덩이 주변을 삽으로 뛰져서 풀을 좀 없애주고 이것저것 손질을 하고 오늘은 좀 일찍 돌아왔다. 일을 해도, 눈을 감아도 마음은 항상 먹구름에 젖어 있다. 내 마음을 흘러가는 저 흰 구름에 그냥 실어 보내고, 마냥 띄어 보내고 싶다. 이래서 선인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도(道)를 추구하는가 보다.
2012. 6. 4. 월. 맑음
맑고 마른 날씨가 계속된다. 내 마음까지 적셔 줄 축축한 빗방울이 그립다. ㅈㅂ아재한테 농사 일로 전화를 했다. 참깨는 70%만 발아하면 되고 안 난데는 나중에 다시 심으면 된다고 했다. 고추는 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따주어야 한다고 했다. 씨앗 참깨 값 등 다른 것도 물어보니 나보고 자주 좀 나와서 돌봐주라고 했다. 내가 공사 간 여러 일로 바쁘다는 말밖에 다른 할 말은 없었다.
2012. 6. 6. 수. 맑음
한없이 맑고 덥고 건조한 초여름이다. 새벽에 일어나 화단 정리도 하고 물도 듬뿍 주었다. 정든 마당의 식구들이 올해는 좀 내 관심 밖이 될 것 같다. 그래도 취나물, 들깨, 울릉도나물 등 모두 정답다. 준비해서 농막에 가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어가 버렸다. 동생과 같이 아카시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늘 힘들어 보이는 동생의 모습이라도 이렇게 보니까 참 안심이 된다. 나도 최소한 형 도리 한다는 게 행복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추포기를 하나하나 지줏대에 묶었다. 두 고랑을 동생 같이 묶었다. 옆의 할머니 한분이 내 일하는 모습이 딱해보였던지 묶는 요령을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고맙다. 이웃 마을에 사시는 분인데 앞에 있는 딸기밭에 일해 주러 오셨다고 했다. 나중에 자그마한 답례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게 바로 아직 남아 있는 시골 인심 같았다.
농기구 수리 센터에 가서 애초기를 2만원에 수리해서 제법 넓게 둑에 난 풀을 베 내었다. 동생이 설사가 심해서 화장실에 자주 간다. 많이 지쳐 보이고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저녁은 같이 먹지 않았다. 대신 면소 약국에 가서 설사 약을 지어 먹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이고 형 도리를 해야 내 마음이 덜 불편할 것 같았다. 오늘은 제법 많은 일에 진척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뿌듯하다. 아내는 몸살과 기침으로 고생하는 데도 옆의 밭에 풀을 다 매었다. 계속되는 뙤약볕에 지칠 만도 하건만 꾸준히 도와준다. 그런 아내가 정말 고맙다. 아내가 이제 그토록 안 한다던 농사꾼의 아내가 되어 버리는가.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서 찐빵을 사다가 커피와 과일로 저녁을 대신하였다.
2012. 6. 8. 금. 비
모처럼 비가 내린다. 밭작물이 자라는 데는 정말 단비다. 한주의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아내가 내일 새벽에 일찍 김밥 사서 농막에 가자고 하면서 짙은 색깔의 무 콜라비 모종을 시내 시장에서 샀다.
2012. 6. 9. 토. 흐림
오전에 약하게 비가 오는 듯 하여 우의를 준비해서 농막에 나갔다. 고추모종 끈 치는 일이 쉽지 않다. 손에 물집도 생긴다. 오전에 두세 시간 작업 하고 다시 시내 들어와서 친구 혼사에 참석하고 많은 친구들과 인사만 하고 황황히 나왔다. 오후에 다시 농막으로 갔다. 이번에는 아내도 끈 묶는 일에 참여했다. 아내가 도와주니 정말 천군만마를 얻는 것 이상으로 힘이 생긴다. 아내는 아직 감기 몸살이 쾌차하지 않는 데 걱정이 좀 된다. 마음속에 우울한 생각, 아득한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이렇게 해서 견딜 수 있었다. 고추 순을 잘라 주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일손이 많이 간다. 동생을 설득해서 동태찌개 3인분으로 저녁을 먹고 큰집에 들렀다. 부모님을 뵙고 그동안의 고추농사 진척 사항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집에 왔다. 오늘도 보람된 하루였다. 주말 농장 생활이었다. 어머니는 오늘따라 무척 밝고 건강한 모습이시다. 좋은 모습이시다.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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