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밭

그해의 농막일기 11/ 고추 순 따기, 고구마 순 심기(2012. 6. 10.~2012. 6. 17.)

청솔고개 2022. 3. 26. 00:42

                                                                                                     청솔고개

2012. 6. 10. 일. 맑음

   날씨가 건조하고 매우 덥다. 어젠 좀 선선했는데 오늘은 흙바람이 부는 것 같다. 아내와 같이 서둘러 농막으로 나갔다. 8시 좀 지났다. 동생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어제 고추나물 무친 걸 전했다. 맛있게 먹는다. 어제 하던 고추 순 자르기 일을 계속했다. 한 고랑 자르는 데 80분 정도 걸린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어린 시절 가정실습해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게 난다. 12시도 되지 않아서 아내가 어지럽다고 급히 심하게 호소한다. 빨리 그늘에 쉬게 하였다. 자칫했더라면 큰일 날 뻔하였다. 전형적인 일사병 증세다. 차를 길가에 바짝 대고 그늘을 만들어서 쉬게 하였다. 점심 먹고 아내는 자리에 누워서 한 숨 자고 나니 좀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고추 순 다듬는 일을 계속하였다.

   오후 6시까지 동생과 같이 셋이서 일을 마무리하였다. 농막 옆 차양막 늘어놓은 곳을 걷어내고 고랑을 만들어서 어제 준비해간 고구마 순을 심었다. 옆 논의 물이 배어 들어서 온통 진창 둔덕이 되어 버렸다. 고구마가 자라는데 질어진 밭이 어떨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동생이 오늘따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것 같다. 아내가 돌아오는 길에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 고추 순 딴 것을 전해 주었다. 아내는 이렇게 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렇게라도 남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나도 기쁘다.

2012. 6. 11. 월. 흐림

   고향 동갑계중 모임에서 중국 여행은 8.2에서 8.6이라고 했다. 나의 이런 여행 일정이 방학중 방과후 수업 일정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담당자에게 미안하다. 동생한테 몇 차례 전화를 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어서 통화를 못했다. 좀 걱정이 된다.

 

2012. 6. 16. 토. 맑음

   8시에 아내와 같이 농막에 도착했다. 모처럼 눈에 띄는 대로 이런저런 밀린 일을 처리했다.

 

2012. 6. 17. 일. 맑음

   고향 마을 상포계중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나는 출발부터 무척 힘들었다. 다리와 발이 또 심하게 저려왔다. 이런 나로 인하여 모두들에게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전부터 산꾼이라고 자처하던 내 자부심도 많이 망가지는 것 같다. 모임에서 몇 잔 홀짝홀짝 들이킨 술기운이 더 힘들게 한다. 눈앞이 거뭇거뭇해지는 게 어지럽기까지 하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는가. 근력이 손상되었는가. 답답해지는 마음이다. 식당 있는 고위평탄지까지 겨우 갔다. 쉬니까 좀 좋아진다. 남은 안주가 부족한 듯하여 식당에서 추가로 준비한 두부 김치 안주로 막걸리 한잔씩 더 걸치고 족구(足球)도 하였다. 잔뜩 부른 배가 꺼지는 것 같았다.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송림 아래서 고향 친구들과 한 잔하는 것, 이것이 생애의 최고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족구는 모두 허재비 춤춘다고나 할까. 작년에 이어 또 족구의 헛발질이 웃음꽃을 만발하게 한다. 모두들 과음 과식해서 바로 옆 산행은 말도 꺼내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오후 3시 지나서 내려 왔다. 작년 이 산곡에서 엎드려 불편한 자세로 있는 부처를 뵈었던 게 생각난다. 꼭 1년 됐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리가든에 가서 저녁 겸해서 식사를 하고 고향의 추억과 정이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끌렀다. 정담을 나누다 보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아쉬운 이별, 모두들 손잡고 손 흔들면서 아쉬워했다.

   돌아오는 길에 농막에 들렀다. 동생한테 족발을 전했다. 이렇게라도 동생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건 아내도 마찬가진 모양이다. 그런 아내가 착하고 참하고 고맙다. 큰집에 들러서 오돌 족발을 부모님께 드렸다. 좋아하신다. 요즘 농사일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드렸다. 우리가 정말 욕본다고 두세 번 말 하신다. 참 고마워하신다.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요즘은 우리 부모님과 고향 친구들의 존재, 그 관계가 내 생존의 이유 같다.    2022.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