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12. 7. 7. 토. 맑음
종일 고추밭에 풀을 매 주었다. 땅에 거름과 비료 기운을 잡초가 다 빼앗아 먹어치운다고 생각하니 참 안쓰럽다. 엉덩이 쿠션을 달고 작업하니 한결 쉽다. 바랭이 같은 풀은 뿌리가 너무 억세어서 두 손으로 힘주어 뽑아도 잘 안 된다. 뽑은 풀은 동생이 치우기 시작한다. 뽑았던 풀을 생각 없이 그냥 두었더니만 다시 뿌리 내리고 뻗어나간다. 이런 잡초의 근성을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오후 1시가 지나서 면소재지에 가서 아내와 동생 셋이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아내는 식당의 환경이 무척 더럽다고 두 손을 저어 보인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보인다. 암만 생각해도 아내가 참 큰 일꾼이다. 삼십여년 더 살아 본 후에야 아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였다. 농막의 채전 밭은 오롯이 아내 몫이다. 그 동안 감자도 캐고 배추, 열무, 상추 씨 뿌리고, 밭 매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몸에 이런 저런 물것이 달려들어 심하게 가려워도 일이 재미있다나. 이게 참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아내는 오후에 모임이 있어 집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좀 쉬었다가 다시 농막으로 나갔다. 풀을 뽑고 치워도 밑도 끝도 없다. 그래도 생명을 가꾸는 일이다. 경건하게 땅과 생명을 생각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잡는다. 6시 지나서 ㅈㅂ아재가 와서 고추밭에 약을 치려다가 호수 조작의 잘못으로 농약을 땅에 다 흘려버렸다. 다시 내가 시내의 시장 종묘농약사에 가서 300평에 사용할 고추 농약 2종류 20말 용량(400L)을 , 300평에 사용할 참깨 5말 용량의 분량을 구입했다. 참깨는 모두 10말 용량인 셈이다. 그 가게 사장이 갈 때마다 늘 친절하고 잘 해 준다. 농사에 관한 궁금한 많은 걸 물어보았다. 농막에 도착해서 다시 물을 타서 농약을 다 치고 나니 저녁 8시 반이 지났다. 날이 이미 저물어서 어두운데 ㅈㅂ아재가 참 고맙다. 내가 조수역할을 했다. 농약 치는 일은 처음 도와 보는지라 어설프다. 농약이 날리거나 흘러서 내 몸에 묻을까봐 신경이 쓰인다. 좀 찜찜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2012. 7. 8. 일. 맑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제 농약 친 후 피곤하다고 씻지도 않고 그냥 자버린 게 찜찜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몸부터 씻었다. 농약의 전반적인 독성이 예전보다는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자주 노출 되면 해로운 건 사실일 것이다.
농막에 도착하니 동생이 농약 친 고추밭 고랑에서 열심히 풀을 들어내고 있었다. 땀을 철철 흘리면서 애쓰는 모습이 무척 대견하여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바로 집에서 싸온 밥으로 점심부터 먹고 오후 일을 시작했다. 동생한테 될 수 있으면 아침 일찍 5시쯤 일어나서 시원할 때 일하고 10시부터 4시까지는 쉬라고 권했다. 지금 여기 기거하는 환경이 안 좋으니 원하면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서 내부 기본 편의 시설 갖춘 집을 꾸면 주겠다고 말해줬다. 아울러 여기는 지하수로 식수를 삼으니 물은 꼭 끓여 먹어야 한다고 다시 일러 주었다.
오늘은 농약을 친 후라 고추밭에서는 일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참깨 밭을 다니면서 뭔가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무당벌레 같은 걸 잡아 주었다고 했다. 백여 마리 넘게 구충(驅蟲)했다나. 그런데 이런 친환경 농법도 결국 ㅈㅂ아재의 참깨 밭 농약치기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무척 무덥다. 어제는 밭에 나가 일을 해도 땀이 배지 않더니만 오늘은 아주 힘들다. 지하수를 퍼올리는 양수기가 고장이 나서 동생이 짜증을 낸다. 어쩌나, 난감하다. 고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동생에게 타일렀다. “이거 사람 사는 게 아닙니다.” 동생이 하는 말이다. 그 소리가 내 가슴을 후려치는 것 같다. 예초기 연료를 사러 가는 김에 동생이 먹을 생수도 큰 거 2통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고 말해줬다.
예초기로 농막 주변에 풀을 벴다. 농막 뒤편을 정리하고 몇 년에 걸쳐 묻어진 비닐 등 잡다한 쓰레기도 치웠다. 풀을 다 베고 난 뒤 뒤쪽 가림 막을 들어 올리니 바람이 통하여 시원하고 좋아보였다. 예초기로 베서 입구에 모아 두었던 풀 더미는 거름으로 만들 셈이다. 풀 더미가 상당한 양이다. 이런 것도 소소한 친환경 농법 실천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후 7시 지나서 ㅈㅂ아재가 참깨 밭에도 농약을 치자고 한다. 나는 헤드랜턴을 켜고 농약 치는 기계의 줄을 잡아 주면서 도와주었다. 다 마치고 집에 오니 저녁 10시 다 되었다. 오늘도 꽉 찬 하루였다. 그래서 보람도 있다. 2022.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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