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이렇게 살아보니, 나의 척추관협착증 체험기 10

청솔고개 2022. 5. 1. 00:05

                                                                                                     청솔고개

   2022. 1. 28. 또 하루가 밝았다.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순한 생활만을 반복하는 순간순간이 흘러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 뭐 거창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이런 순간순간이 흘러가서 이루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침으로 걱정했던 큰 꼬맹이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어린이집으로 가서 다행이다. 많이 컸다. 이 아이가 성인이 되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까?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기나 할까 싶다. 종일 틈만 나면 걸었다. 거의 맹목적이고 본능적이다. 걸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거실 유리문을 통해 멀리 길과 건물이 맑은 겨울 햇살에 빛나는 걸 보는 거다. 특히 서쪽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는데 딸내미에게 물으니 ㄷ*산이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저녁 먹고 바로 들어가서 침대 위에서 DMB 듣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 깨니 11시 반쯤 됐다. 세 메시지가 와서 열어보니 초등동기 한 친구가 작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우리의 생존과 운명은 그야말로 70대 통계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 같은 걸 실감하겠다. 비교적 가까이 지내던 초등친구 중 최근 5년 이내에 유명을 달리한 친구는 ㅈ**, ㅅ**이다. 이어서 벌써 세 번째다. 인간 삶의 미약함고 허망함을 더욱 실감하겠다. 첫째는 낮에 식탁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니 내 경추도 구부러진다고 걱정이 많다. 허나 여기서 내가 이런 작업마저 안 한다면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근본적인 회의가 생긴다. 오늘은 방안 실내 둘레를 14회 걸었다. 700미터를 더 걸은 셈이다.  저녁 먹고 한숨 자고 나서 잠깐 느낀 불편해지는 마음 외에는 하루 종일 이상하게 아주 평온함이 유지된다. 치열한 육체의 고통이 마음에게 주는 보너스인가.

 

   2021. 1. 29. 참 평화롭게도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날이 새면 잠을 깨고 때가 되면 밥을 먹으면 된다. 시간나면 가장 천천히 걷고 지루하면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 청취만 해도 된다. 내가 지금까지 관여하고 걱정하던 모든 게 내려 놓인 것 같다.

   새벽에 내가 꿈을 꿨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사랑방 같은 데서 어머니가 먼저 작은 꼬맹이만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우리 오남매는 모두 그 좁은 방에서 같이 자려고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좀 있다가 숙모님께서 또 그 또래의 갓난아이를 데리고 와서 젖을 먹이고 있었다. 밤인 듯했는데도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내가 식사 준비하려니 작고하신 종중의 조항뻘 한 분이 나타나서 “뭣 땜에 밥해 먹으려고 하느냐, 시켜 먹으면 된다.”고 하신다. 최근에 마을에 중국집이 하나 생겨서 주문하면 된다면서 말하신다. 식당 번호를 좀 달라고 했더니 좀 있다가 알려주겠다고 하시면서 큰 사립문으로 나가신다. 마당은 비가 왔는지 아주 질벅질벅하다.

   아내한테 이런 꿈 얘기를 했더니 아직 내가 이번 수술 직후이고 더구나 초등 동기 ㅇ**친구의 작고 때문에 마음이 과민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오늘도 어제만큼 걸었다. 내 몸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는 것 같다. 하루에 0.1씩 나아지는 거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오늘은 아내가 혼자서 수술 부위 상처 소독을 해 주었다.

   오늘 2시 40분쯤에는 고향의 둘째와 거의 한 시간 정도 온갖 세상 관심사에 대해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속이 좀 틔는 것 같았다. 이러한 소통이 아이의 최근 마음가짐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대화만으로도 내게도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오늘은 아이의 목소리의 힘이 좀 살아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4개월은 족히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 “나는 걷는다.” 아득하다.    2022.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