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이렇게 살아보니, 나의 척추관협착증 체험기 8

청솔고개 2022. 4. 29. 00:28

                                                                                                     청솔고개

   2022. 1. 23. 나의 오줌 체크는 퇴원 직전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철저함이 오히려 병원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아내가 중심이 돼 서서히 퇴원하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옆의 환자가 내일 수술을 앞두고 최종 뇌 검사를 하기 위해서 딸과 함께자리를 비운 틈에 커튼을 열어젖히고 강변의 겨울을 바라다보았다. 멀리서 봐도 꽁꽁 언 얼음장 위로 아직도 엊그제  다시 내린 흰 눈이 쌓여 있다. 멀리 북한산 연봉은 운무와 미세 먼지로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병상 있는 자리에서 폰으로 병원비 납부하고 아내는 퇴원 수속을 위해 내려갔다. 그 사이 간호사가 와서 약을 전해주면서 약 복용 방법도 설명해 주었다. 수술 부위에서 나오는 피를 모으는 주머니와 이에 연결된 호스를 빼냈다. 그 등 부위에 가해지는 묵직한 둔통으로 내 얼굴이 구기어진다. 그냥 참는 거다.

   퇴원 수속 갔던 아내가 올라왔다. 이제 나가면 된다. 옆 병상의 부녀가 검사 마치고 들어왔다. 아내도 입실 때 말 섞어 첫인사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빠른 쾌유 바라는 인사를 전한다. 나도 쾌차하시라는 말을 전했다. 내가 일단 휠체어를 몰아보는데 맘대로 잘 안 된다. 간호사실에다가도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했다. 병원 밖으로 나오는 것은 참 간단했다. 벌써 첫째 내외가 입구에 도착해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은 역시 매운 겨울 날씨다. 차안에는 꼬맹이들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모든 게 고맙고 반갑고 눈물겹다. 집에 올 때까지도 내가 잘 견뎌냈다는 자신감, 성취감으로 기뻤다. 그런 안도감에 푹 잠길 수가 있었다. 지금이 내 생애 가장 특별하고 감동적인 한 순간이다. 그래도 차가 약간 급정거하거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수술부위가 행여 잘못될까봐 조바심이 생긴다. 끝까지 안전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긴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이제 집 밥도 식탁에서 먹어보았다.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어보았다. 자유롭게 잠자 보기도 하고 걷기도 해 보았다. 모든 게 새삼 신기하다. 새 삶을 얻은 감동이 있다. 

 

   2022.1.24. 퇴원 후 첫 밤을 보냈다. 편안했다. 퇴원 이틀째,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다. 내일 화요일 아침이 되면 딱 일주일 전으로 쳐서 수술하기 바로 하루 전 날이 되는 셈이다. 결코 되새기기도 싫은 고통, 불안, 고독의 시간도 이렇게 흘러간다. 방안에서 살살 걸어보았다. 제법 걸어진다. 양 발바닥의 저림 증상은 그대로다. 여전히 진땀이 좀 나고 약간 어지럽고 메스껍다.

 

   2022.1.25. 아침에 일어나 거실 너머 길을 보니 축축이 젖어 있는 것 같았다. 겨울비가 살짝 내리고 있다고 했다. 문득 오래전 독일 늦가을의 프랑크플루트의 비에 젖은 모습이 스친다. 참 좋은 여행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한 발짝씩 걸음마 연습하다가 메슥거리거나 힘이 빠지면 그냥 쉰다. 아직 오심(惡心) 증세가 가시지 않는다. 갈수록 나의 모든 관계는 더욱 단절되어가는 것 같다. 이게 나이 드는 데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점심 먹고 첫째 내외가 나를 근처 정형외과로 데려다주었다. 퇴원 후 첫 외출이다. 바깥에서의 걸음이 아주 조심이 된다. 첫째 내외는 차에 내려서 아직 걸음이 어설픈 나를 위해 어깨를 꼭 끼고 도와준다. 전번에 퇴원할 때도 그랬었다. 그런 마음들이 참 따스하다는 걸 느꼈다. 의원에서 수술 부위 외상 소독은 아주 간단히 처리되었다. 오후 시간도 휴식, 낮잠과 폰 보고 듣기, 걸음마연습, 생애기록 등을 일삼았다. 조금만 활동해도 또 오심 증세가 나타난다. 뭔가 잘못 돼 가는 건 아닌지 부쩍 신경 쓰인다. 퇴원 후 증상에도 안내돼 있는데 오심이 아주 심해지면 병원에 연락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2022.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