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금부터 딱 10년 전, 내가 현직의 마지막 담임교사(고등학교 3학년) 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한테 낭송하면서 띄운 편지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 맞이하여, 이를 통해 그때의 소회를 되새겨 볼까 합니다.
청솔고개
36막내들이여-삼륙통신 4(2010.5.15.토)
나는‘스승’이라는 호칭은 너무 권위적이고 고답적인 같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날 정도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가사에‘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는 너무 지나친 표현입니다. 현실감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이날을 만나면, 오늘날 교사의 위상, 교사를 보는 주변의 시선과 더불어 다소 씁쓸함을 느낍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교사들의 책임도 큽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관심, 축하, 정성만 생각하겠습니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인연이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부모 자식 인연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우리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인연을 소중히 가꾸어 나가도록하십시다.
나는 언약의 소중함, 인연의 소중함, 동행의 소중함을 가장 높이 삽니다.
나는 여러분 막내에게 “같이 가자~”, “같이 가야지~”를 지금도 되뇌고 있습니다. ‘동행(同行)’입니다. 그래야만 지치지 않고 더불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막내들은 자기의 그릇만큼만 주변에 이바지하면 됩니다. 자칫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불러드릴 수도 있습니다.
난 평생 이러한 신념으로 교단(敎壇)에 서고 있습니다. 혹 교단이 뭔지 아세요? 옛 목조 교사의 교실 앞에 좀 높게 배치된 연단을 말합니다. 교사들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지금은 다 없어졌지요.
나는 오늘만 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대학 3년 동안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 사범대학 재학 중인 학생이자 선생님들이 중심이 되어 1972~1974년도 3년간 중학교에 못간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만 해도 우리가 못 살아서 그런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은 주변의 고아원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스님도 있었고 경찰도 있었으며 월남전 참전 용사도 있었습니다. 내가 가르쳤다고 하지만 배운 게 훨씬 더 많았습니다. 나는 현직에서 가르치는 일에 힘이 들면 그 때 일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야학 활동은 인생과 교직 생활에서 더 없이 소중한 배움의 장었습니다.
또 하나는, 훨씬 더 전, 나의 고2 시절, 자연계 특설반에 있다가 성적이 미달되어 2학기에 학반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던 일입니다. 쉽게 말하면 보통 반으로 밀려난 것이지요. 그래서 담임교사, 교실, 급우들이 싹 바뀌었습니다. 나는 참담했었습니다. 현재 내가 담임교사 하면서 그때 심경을 되새겨 봅니다. 어떤 일로 학교에서 참담해하는 아이들의 심경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줄은 아는 담임교사는 최소한 되자고.
이러한 일들은 평생 나의 삶의 방향이나 태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온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나는 늘 이런 마음으로, 여러분들 막내들을 대하려고 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선언합니다.
여러분들의 축하와 격려,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선생님 되기를 애쓰겠습니다.
2010. 스승의 날 아침에 우리 막내들 앞에 두고
2020.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