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읽기의 감동

나의 평생 낚시 로망 2, 그날의 낚시질

청솔고개 2022. 7. 8. 00:13

                                                                                                                          청솔고개

   “메뚜기를 담은 통과 새로 만든 낚싯대를 손에 든 한스는 다리를 건너 수풀을 지나 말을 씻기는 웅덩이로 갔다. 그곳은 강가에서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그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한스의 가슴은 남 모르는 기쁨과 사냥꾼의 즐거움이 넘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곳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버드나무에 기대어 편안하게 낚시질을 즐길 수 있는 터가 있었다. 한스는 실을 풀어 조그마한 납덩이를 달아 매고, 낚싯바늘에 살진 메뚜기를 가차없이 찔러 꽂았다. 그러고는 강의 한가운데로 힘껏 내던졌다.”

   “숲가에는 솜털과 노랑꽃을 가진 양담배풀이 위엄을 드러내며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가늘고도 억센 줄기 위에서 흐느적거리는 부처꽃과 분홍바늘꽃은 골짜기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안쪽 잣나무 아래에는 빨간 디기탈리스가 품이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이국적인 자태를 자랑하며 피어 있었다.”

    위 글 역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김이섭 옮김)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여기서도 낚시와 자연에 대한 헤세의 표현이 번역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답다. 헤세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자연에 대한 깊고 넓은 식견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해석과 의미 부여는 나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후 나도 강가나 못가에서 물고기 크기나 마릿수에 대한 집착보다도 흘러가는 강물, 강가의 물풀, 그 물풀위의 잠자리, 강둑의 도마뱀이나 물새의 둥지, 떠가는 구름을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낚시 자체의 손맛이 주는 그 떨림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고 느끼던 모든 자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을 헤세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자연에 대한 의미부여에 대한 표출은 단순한 감상(感傷)이 아니라 헤세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우주, 세계, 사람에 대한 철학적 상상력과 연계되어서 깊고도 그윽하며 아름다운 시적 영감을 내게 끊임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대학 2,3학년 여름은 내게 헤세의 계절이었다. 내가 헤세를 알기 전과 헤세를 알고 난 후 내 세계관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산문을 썼지만 그건 내게는 하나하나가 즉흥시인이나 음유시의 구절구절이었다. 나는 ‘헤세의 낚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낚시는 그냥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시간 때우기 용으로만 인식했었다. 이후 나는 낚시를 떠날 때마다 헤세의 낚시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떠올리곤 하였었다.

   그때 나는 주말만 되면 낚싯대를 챙겨서 떠났었다. 벌써 토요일 출근하게 되면 오후 출조에 대한 흥분으로 들뜨게 된다.

   사흘밤낮으로 가마니에 돼지 뼈를 넣어 집어(集魚)를 한 뒤 미터짜리 물고기를 대 여섯 마리 잡고 있는 전문꾼의 옆에서 낚시한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큰 물고기가 잉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었다. 그 때부터 나도 평생 잉어 한 마리는 낚아 보아야겠다는 야심 아닌 야심도 생겨났었다. 그 후 열심히 잉어 전용 밑밥과 떡밥을 투척했는데도 돼지 뼈 밑밥이 없어서 그런지 아직 잉어 한 마리 구경 못했다. 나는 가늘고 호리호리한 들낚시에 저런 큰 놈이 걸려들면 그 손맛이 과연 어떠할까 상상해 보곤 했다.

   한번은 동료들과 같이 내가 안내해서 큰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하는데 밤새 속칭 이스라엘붕어라고도 불리는 블루길만 줄곧 잡혀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토종붕어는 씨가 말라버린 것 같았다. 이 반갑잖은 놈이 심지어 한꺼번에 두 마리씩 달려올 때도 있었다. 이놈의 특징은 낚시를 던져서 추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입질이 온다는 것이다. 입질과 손맛만 생각하면 이놈만한 것도 없다 싶었다. 이 종은 배스와 더불어 외래종, 생태계교란야생동식물로 지정돼 있다. 그 광포한 식성으로 인해 토종 물고기, 새우, 가재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서 대표적인 유해 어종이다. 나는 그만 맥이 빠져 새벽녘에는 텐트에 들어가서 한숨 눈 붙이고 나와서 보니 낚싯대가 둥둥 떠 있었다. 놀라서 급히 채 보니 뭔가 넓적한 게 달려올라 오는 게 아니가. 나는 잉어라도 잡혔나 싶어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제법 큰놈의 자라였다. 일단 끌어 올렸다. 그런데 이놈의 처분을 두고 일행의 의견이 분분했었다. 이런 건 쉽게 볼 수 없는 영물(靈物)이니 방생(放生)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 놈이 한방에서 특효약으로 취급되니 주위에 필요한 사람 있으면 줘서 구워먹게 하면 좋은 일 한번 하는 거라면서 일단 두고 보자고 하는 게 아닌가. 물고기 담는 소쿠리에 일단 담아 두기로 했다. 새벽에 다시 잔 붕어의 낯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까봐 열심히 낚시질했다.

   그런데 갑자기 못 둑 맞은편 국도에 십여 대의 군용차가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질주하는 게 보였다. 나라에 무슨 비상사태가 생겼는가 싶어 무척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밤에 이 지역 동해안에 무장공비가 침투해서 지역 예비사단 병력과 일부 예비군이 작전에 투입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이 소동도 있고 해가 뜨고 햇살도 달고 해서 우리는 철수할 준비를 하고 물고기 담는 통을 점검해 보니 새벽에 분명히 체포해서 담아 놓았던 자라가 보이지 않았다. 그 실종은 암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다.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라를 영물이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자라는 발이 있어서 통을 타고 기어올라 탈출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 방생에 대한 고심이 필요 없어진 데 대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