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슬프고 허탈한 마음으로 하루를 접는다. 아무래도 내가 단단히 탈이 난 것 같다. 몸과 마음 모두.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오늘 종업식이다. 야학(夜學) 1학년 아이들을 마지막 보게 된다. 무연히 울고 싶어진다.
너무 아프고 슬프다. 오전에 그 아이를 향한 시를 썼다. 봉투에 넣었다. 그래도 답답하고 괴롭다. 저녁에 못 둑에 있는 수월(水月)에 갔다. 춥다. 차가운 밤이다. 아이를 보았다.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이다. 언제나 가까이 있고 싶다. 볼수록 슬퍼지는 자태다.
아이의 자그마한 눈길을 마음으로 더듬어본다. 술 한 잔 하고 외상값을 지불했다. 언젠가 아이의 오른쪽 둘째손가락이 방직공장 일할 때 기계에 잘렸다 했다. 그 한 마디 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래서 너무나 애잔한 마음이 남아있다. 아이를 위해 지은 시를 전해 주었다. 아이는 구석에 가서 몰래 훔치듯 보았다. 아이가 그 시의 속뜻을 헤아릴는지. 아무튼 나는 뭔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이다. 한 겨울 바람이 볼을 스친다.
아이는 나를 전송해 주었다. 차가 떠날 때까지 오랫동안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아이의 모습도 겨울 안개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후 오랫동안 못 보았다.
그 다음해인가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으로 기억된다. 아이가 북적거리는 시장 통 가게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물어서 찾아갔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나눠 마시고 나왔다. 그리고는 헤어졌다. 그렇게 스치듯 한 번 본 기억이 있다. 이후 한 번도 못 만났다. 나의 또 다른 인연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하니 한 번도 못 만난 게 참 잘 된 것만 같다. 2023. 1. 21.
'나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해 겨울 1, 피폐하고 방황하는 청춘이라서 밤새 시뻘건 울분만 토하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았었다 (0) | 2023.01.25 |
---|---|
2023설날 산소에서의 새 축문, 새해를 맞이하여 저희 後孫들이 祖上님들의 恩德과 그간의 加護에 깊이 感謝하오며 (0) | 2023.01.22 |
버림과 지님, 기록과 기억 4/ 수전증을 견디면서 꾹꾹 눌러쓴 평생 생애기록물은 또 어찌할 것인가 (0) | 2023.01.06 |
버림과 지님, 기록과 기억 3 (0) | 2023.01.05 |
버림과 지님, 기록과 기억 1 (0) | 202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