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수십 년래의 한파가 연일 한반도 상공을 휘몰아치고 있다. 요 며칠 같으면 잠깐의 외출도 겁날 지경이다. 문득 아득한 지난날의 겨울날들을 떠올려본다. 70년대 전반 겨울은 춥고 무척 거칠었다.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가 겹쳐져서 더욱 그랬다. 그때 20대 우리들이 기대어 위로 받을 곳이란 딱 두 곳, 시대의 울분과 청춘의 고뇌를 음유한 노래와 민족주의신념이었다. 우리를 구원해줄 그 무엇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는 아직 젊은 나이라 어디 기댈 데라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도무지 등 받쳐 기댈 곳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혹한이 더 독하고 두렵게 여겨지는 것 같다.
당시 겨울이면 눈보라 치는 태백준령을 혼자 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었다. 용기 없는 나는 그렇게 실행에 옮겨보지는 못하고 늘 가슴속 상상만 했었다. 청춘의 고뇌를 그저 혼자 토로하기만 했었다. 천신만고 끝에 그 너머에는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그 어딘가 외딴 섬에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줄 등대지기의 따스함을 그리워하곤 했었다.
그 안에는 활활 타는 장작 난롯불이 있고 그 주변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 던질 각오가 돼 있는 많은 청춘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 중에 어느 곳에 용기 없는 나도 끼어 있다. 지금은 비록 피폐하고 방황하는 청춘이라서 밤새 시뻘건 울분만 토하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잃지 않는다.
그 청춘들을 위로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등대지기’다. 나는 오늘 밤새 이 등대지기를 되뇌어보면서 20대 전반 나의 청춘시절을 반추해본다.
그때 우리가 밤새워 피 토하면서 찾아헤매던 우리들의 세상은 과연 도래했는가. 나의 좋은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등대지기
얼어붙은 달그림자
하늘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바람소리 울부짖는
어두운 바다에
깜빡이며 지새이는
기나긴 밤하늘
생각하라
저 바다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2023. 1. 25.
'나의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해 겨울 3,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거친 역사의 광야에서 헤매야만이 이 땅에서 진정한 민주와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0) | 2023.01.27 |
---|---|
그해 겨울 2, 겨울 나그네가 돼, 파도의 휴식을 지켜보러 떠나야 할 것만 같다 (0) | 2023.01.26 |
2023설날 산소에서의 새 축문, 새해를 맞이하여 저희 後孫들이 祖上님들의 恩德과 그간의 加護에 깊이 感謝하오며 (0) | 2023.01.22 |
그해 겨울, 짧은 만남과 긴 이별, 이후 한 번도 못 만났다. 나의 또 다른 인연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하니 한 번도 못 만난 게 참 잘 된 것만 같다 (0) | 2023.01.21 |
버림과 지님, 기록과 기억 4/ 수전증을 견디면서 꾹꾹 눌러쓴 평생 생애기록물은 또 어찌할 것인가 (0) | 2023.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