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70년대 전반부터는 길고 긴 민주주의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70년대는 유신독재의 발발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으로 출발했다. 이런 상황은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었다.
용기 없고 무력한 나는 이런 상황을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당시 시대의 불의에 대한 분노를 행동화하지 못한 나 같은 청춘들은 술과 허무주의로 도피하곤 했었다.
그 허무주의는 낭만과 감성으로 달콤하게 위장되곤 했었다. 그 허무주의는 시와 순수의 세계로 숨기도 했었다.
나는 어쭙잖은 시 나부랭이를 끼적이면서 순수를 떠벌리곤 했었다. 문학에서도 이른바 순수와 참여 논쟁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해결된 건 별로 없었다.
행동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란 이름으로 쓰러져갔다. 행동하지 못한 지성은 스스로의 분기, 치욕을 억누르지 못해 민족과 역사의 정의를 울부짖다가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곤 했었다. 그 피가 흘러 터지는 처절한 고통을 당하는 친구도 보았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이로 인한 뇌졸중 중증장애자가 되었다. 회한과 자책으로 평생을 보내고 있다.
이 시절, 나는 겨울을 참 좋아했었다. 나의 노래도 겨울을 주로 불렀다. 그 이유를 나는 삼라만상이 위선과 가면을 벗어던지고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이런 상태가 바로 순수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던 것이다. 당시 내가 가장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것은 겨울바다, 겨울나무, 겨울바람, 겨울 강 이었다. 내가 위선의 가면을 너무나 두텁게 쓰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최근에 남해안까지 얼어붙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80년도 그해겨울에 나는 동해바다의 파도가 얼어붙은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주야장천 쉼 없이 철썩이는 파도가 드디어 하얗게 얼어붙어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수십 년 이래 한파라서 어느 지역에는 포도뿌리가 다 얼어 죽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제 나는 혹한을 뚫고 겨울 나그네가 돼, 파도의 휴식을 지켜보러 떠나야 할 것만 같다. 2023.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