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나는 과연 떠날 수 있을까? 혼자만의 긴 자유여행을. 지금 내가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정도 자유여행을 간다면 부닥칠 수 있는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일까?
첫째로 내가 남 만큼 잘 걸을 수 있는 자신감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한 지 1년 2개월 가까이 된다. 지금 나의 보행 상태는 내 또래 평균의 60%로 추정된다. 이는 물론 엄정한 조건을 부여해서 실험한 결과는 아니다. 다만 내가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도를 지켜보면서 비교한 결과다. 지금 나는 '심하지 않은 장애'로 판정된 지체 장애자다. 진단 결과 수술로 인한 활동성이 20% 이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심한 장애'로 판정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수술 전과 비교했을 때는 보행활동성이 현저히 향상되었다. 그때는 10% 정도 활동성이라고 자체 평가된다. 나의 장거리 여행 진행에서 빠져 있는 딜레마는 바로 이것이다.
남과의 보행 속도에 맞출 자신이 없으니 패키지, 혹은 세미패키지 형태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여행단의 한 사람이 돼서 인솔자의 요청대로 어느 정도는 움직여주어야 하는데 그에 부응할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행단 전체 진행에 방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따라붙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내가 그 좋아하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장거리 나들이를 거의 못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고향 친구와 많은 시간, 많은 거리를 동행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비현실적인 욕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몇 달 전 초등 동기생들과의 서울 나들이 권유에 내가 처음부터 전혀 호응할 수 없었던 데서 충분히 입증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타인이 어떤 불편이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이는 나의 자존심과 관련되고 또한 나의 정체성과도 밀접하다.
나는 또 척추관협착증 수술 6개월 전부터 발바닥의 감각이 많이 무디어졌었다. 마치 발바닥에 비닐 장판을 오려붙여 놓은 것 같은 증상이 그 이후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주 얕은 언턱거리에도 걸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한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만약 걸려서 뒤뚱거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떤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가장 불편할 때는 자전거 타고 내릴 때다. 수술부위인 3,4,5번 요추를 볼트너트로 고정시켜 놓았기 때문에 유연성이 떨어져서 그렇다. 그 밖에 울퉁불퉁한 오르막 내리막 보행할 때, 양말 신거나 신발 신을 때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지만 슬리퍼를 끌고 다닌다.
장거리 여행 중 불의의 타격이 부위에 가해지면 난감할 것이다. 재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떠날 수 있을까? 내 필생의 과제인 최소한 3개월 정도의 저 미지의 대륙을 관통하는 자유여행을! 2023.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