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나는 평생을 살면서 나의 가장 부끄러운 일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라도 마련해 놓았던가, 나의 모든 비밀을 공유할 만한 친구가 있었던가, 하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이것이 세속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우정, 순수한 우정, 절대적 우정을 판별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니 30대 청년시절까지는 절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약점, 나의 내밀한 고통을 표출하지 못하고 그냥 혼자서 속을 끓이고, 행여 주변에서 알기라도 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었다. 40대에서 60대까지는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의 근무에 몰두하다보니 그럴 만한 계기가 없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삼불화두(三不話頭)에 평생 힘들어하는 것도 나의 이런 성향에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내게 친구라는 게 존재하기는 했던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보다 근원적인 회의(懷疑)에 빠져 본다.
이제는 이렇게도 생각을 돌려본다. 내게 이른바 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나와는 근원적인 사고방식이나 이념을 달리해서 불통상태가 된다면, 혹은 불의의 사고나 지병으로 죽어서 내 곁을 떠나간다면 그때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또한 나는 이에 어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미치면 친구든 친구관계든 모든 게 헛되고 허망해지는 것 같다.
다음 노래가사에서 그려지는 친구 관계는 나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높고 큰 나무와 같은 존재일까? 그래서 아예 나와는 아주 상관이 없다고 치부해 버릴까?
“얘기하지 않아도 가끔 서운케 해도/ 못 믿을 이 세상 너와 난 믿잖니
겁 없이 달래도 철없이 좋았던/ 그 시절 그래도 함께여서 좋았어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게 변해도/ 그대로 있어준 친구여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
너와 마주 앉아서 두 손을 맞잡으면/ 두려운 세상도 내 발아래 있잖니"
[안재욱님의 노래 ‘친구’의 가사 일부]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욱 속으로 가열하게 마음의 힘을 모아서 소금기 저벅이고 모래바람 휘몰아치는 사막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거기서 끝내 본연의 ‘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오롯이 홀로. 어느 시인의 다음 고백처럼.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유치환님의 시 ‘생명의 서’에서] 2023.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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