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만남이란 1/ 감정이 과하게 실리지 않은 명철(明哲)한 언설(言說)로 표출(表出)하는 것
청솔고개2023. 2. 12. 18:32
청솔고개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라는 경구가 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아주 소극적인, 자신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태도 같아서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물이 흘러가면 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같은 자연의 이법이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이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이며 관계 설정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려고 작정한 사람은 결국 언젠가는 떠나가게 마련이다.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도 올 사람은 오게 마련이다. 그러니 오는 사람 향해 손사래 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생애 내내 왔다가 가는 행복과 불행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는 사람을 너무 잡으면 집착(執着)이 된다. 오는 사람 너무 막으면 배척이 된다. 인생 고(苦)의 근원은 바로 극단적인 집착이고 배척이다. 집착하지 말라고 해서 쉽게 집착이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꾸준히 집착하지 않으려는 연습을 하고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려놓으려는 마음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한다.
나이가 칠십 줄에 드니 고향에서의 크고 작은 모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고향 마을 친구들의 모임, 초등, 중·고등 동기들의 모임, 여기서 파생된 몇 개 서브그룹 등이다. 더구나 긴 코로나 터널을 지나오면서 모임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어떤 친구들은 동기회 모임이 너무 재미가 없다면서 안 나오겠다고 한다. 어떤 친구는 회비가 부담이 돼서 못 나오겠다고 한다. 어떤 친구들은 집행부의 누구의 언행이 싫어서, 막말을 참을 수 없어서 못 나오겠다고 한다. 그 친구 안 나오면 자기가 나오겠다고 한다. 여기 나오고 안 나오고는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모임의 총무나 회장을 몇 군데 맡았거나 맡고 있지만 모임에서 빠지려는 이런 친구들에게는 절대 두 번은 모임에 다시 나오라고 강권하지 않는다. 섭섭해 하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평가나 비판도 하지 않는다. 삶이란 더불어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홀로 가는 길이다. 개인의 철학, 인생관, 가치관, 성향, 삶의 태도에 따른 선택이다. 어느 것이 더 옳다, 정답에 근접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가장 모범 답일 것이다.
요즘 단체 카카오 톡 방에서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별별 성향을 다 가진 친구들이 별별의 이야기를 다 풀어놓고 있다. 어떤 것은 나하고 전혀 맞지 않은 것도 있다. 특히 정치와 사회적 메시지가 그렇다. 그러면 예민한 친구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그냥 자기 의견을 근거에 입각해서 풀어나가면 될 텐데 일부러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그러면서 거기서 그냥 자진 퇴장(자퇴)이라는 강수까지 둔다. 이런 강한 주장과 강한 반발은 갈등의 요인이다.
우리의 만남과 관계에서의 현명한 방책은 근거 있는 주장(主張)과 명분(名分)있는 퇴장(退場) 그 중간 어디쯤에서, 감정이 과하게 실리지 않은 명철(明哲)한 언설(言說)로 표출(表出)하는 것이리라. 2023.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