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아재, 나의 아재 7, 고향 꽃길로/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는 숙부(叔父)님께서 복이 많으신 듯하다. 고향 길 130여 킬로미터 한 시간 반 동안, 그것도 고향 꽃길로 해서 든든한 두 손자..
청솔고개2023. 3. 28. 21:38
아재, 아재, 나의 아재 7, 고향 가는 꽃길로
청솔고개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에는 숙부님께서 복이 많으신 듯하다. 고향 길 130여 킬로미터 한 시간 반 동안, 그것도 고향 꽃길로 해서 든든한 두 손자의 이끌림을 받으시고 환향하셨으니 말이다. 그 복이 또한 우리 후손에게 이어질 것만 같은 좋은 예감도 든다. 이번에 ㅅㅎ, ㅈㅇ 두 조카의 모습을 보고 형제가 이제 우리 집안을 이어갈 큰 재목으로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나는 많은 안심이 됐다.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종제, 종수(從嫂)씨 내외가 두 아들을 잘 키웠더군. 앞으로도 종제가 아비로서 두 아들 뒷바라지 한다고 힘은 들겠지만 장차 우리 집안의 큰 기둥이니 잘 가꾸어주면 좋을 것 같다. 두 젊은이에게 정말 많이 기대가 된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도 않았는데도 이번에 서울, 부산 원근 각지에서 많은 문상객이 와 줘서 생전에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시던 숙부님이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다. 일정 조정도 우여곡절 끝에 예식장 측의 노력으로 잘 해결되고 날씨도 걱정과는 달리 갈수록 활짝 개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모두가 숙부님의 생전 베푸신 덕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마지막까지 많은 분이 함께 깔끔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아 보였다. 이 역시 종제의 복이고 평소 베푼 덕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아버지 가실 때, 나도 그 장례식 기간에는 정신없이 지나가버려서 애통함도 쓸쓸함도 못 느끼었는데 지나고 나니 불쑥불쑥 한번 씩 슬픔이 치밀어 오르더라. 특히 아버지의 유품이나 연상되는 것을 마주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보고 싶음에 거의 미칠 것만 같을 때도 있었다. 그 슬픔에 나의 외로움과 아득함이 겹쳐져서 주체할 수 없더라. 어머니 가셨을 때는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시니’ 하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아버지마저 가시고 나니 세상이 온통 텅 빈 것 같더라. 2023.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