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서 1, “그대로 빈집이다. 다만 취나물만이 제 홀로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청솔고개
아내가 마련해준 반찬을 동생에게 전해 줄 겸 주말에 모처럼 큰집에 갔다. 오늘따라 큰집의 먼지 냄새가 더욱 진해진 것 같다. 거미줄도 부쩍 늘었고 아버지가 생전에 그려놓으신 담벼락의 그림도 많이 바래져있다. 마당에는 일찍 핀 동백꽃잎과 다른 나무들의 꽃잎들이 떨어져 봄 가뭄에 바짝 말라 보인다. 풀풀 날릴 것만 같다. 나무가 내뱉어버린 것 같은, 그런 동백꽃잎들이 내 마음과 몸의 생채기처럼 붉게 터져 있다.
그대로 빈집이다. 다만 취나물만이 제 홀로 소담스럽게 자라고 있다. 어느 해 봄 아내와 같이 이 철에 나물 뜯으러 갔다가 취나물 뿌리 채 캐서 여기 꽃밭에 심어 놓았던 것이 생각난다. 해가 갈수록 더욱 그리운 순간들이다. 그 취나물은 해마다 스스로 참 잘도 자란다.
나는 벌써 그늘이 짙어 진 서쪽 거실에 앉아서 삼삼오오 떼 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어본다. ‘하하호호, 까르르’ 하는 젊은이들과 꼬맹이들의 소리가 내 귓전을 때리는 것 같다. 내 젊은 시절 골목길을 오갈 때 대문 앞이나 툇마루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동네 노인의 모습 그대로다. 이제 내가. 마당에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에 빗긴 오후 햇살을 바라다본다. 2023.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