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1. 14.
아침에 잠이 깨려 하는데 근처에서 수닭의 울음소리가 아주 걸쭉하다. 너무 많이 울어서 목이 쉰 것인가. 한 나라의 수도 도심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다니! 마치 한적한 시골 농촌 마을의 아침 같은 평온함을 느낀다. 오늘은 비엔티안 여행 1주 차 일요일이다.
아침 식사 후 11시에 만나서 도가니 쌀국숫집에 갔다. 엊저녁에 이어 오늘 오전도 무척 선선하다. 바람도 설렁설렁 분다. 오늘은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소짜 쌀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맛이었다. 흡사 잔치국수 맛이라 할까. 아내는 육수가 돼지고기 삶은 물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잘 먹는다. 오는 길에 어제 못 샀던 망고 주스를 사서 호텔에 왔다. 아내는 어제 한 시간 남짓 잤다고 한다. 오후에는 잠을 청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나도 2시간 정도 잤을까. 아이는 설사기가 있어서 좀 불편해한다. 그러면서 이런 자유여행은 이럴 때는 여유 부리면서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아내가 원해서 여기서 일 주 더 연장하니 훨씬 여유가 생긴다. 아이는 앞으로의 루앙프라방에서 치앙마이, 치앙마이에서 인천까지 항공권, 루앙프라방 3일 숙박, 치앙마이에서 13일 숙박 예약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생긴 설사는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아이도 웃으면서 “그런가 보죠?”, 하고 나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듯하다.
오늘은 베란다에서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노트북에 입력을 했다. 난해한 듯하면서도 천천히 읽으니, 나에게 큰 힐링이 되는 내용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저녁에 다시 이빨에 살짝 통증이 있었는데 잘 참아주어서 이 또한 큰 축복 같다. 모든 걸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전환하는 것이 톨레가 말하는 ‘고통(苦痛)체’ 극복의 방안 같다. 30도 내외의 포근한 날씨 때문에 몸이 많이 이완돼서 참 좋다. 이런 호사(豪奢) 여행할 수 있는 나는 큰 복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베란다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건 건기라 한껏 말라가지만 여전히 푸른 빛으로 반짝거리는 메콩강물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반드시 오후 4시 지나 강변 숲과 중국풍 건물 주위를 산책해야 한다고.
오늘 낮에 ‘福德廟’ 옆 가로등에서 플루메리아 장식물을 처음보았었다.
지금은 오후 4시 20분. 중국인으로 보이는 젊은이 서넛이 신발을 벗고 예를 갖추어 사당 안으로 들어가 참배(參拜)를 한다. 자기 나라의 문화가 변방국에 심겨 있는 것을 보고 국뽕이라도 차오르는가 보다. 나는 사당 안에 들어서 있는 인물보다 사당 기둥과 출입문의 주련이 관심이 더 간다. 그 뜻을 풀어 본다. 어제인가 여기서 야시장 터로 나가는 샛문이 있는 걸 알았었다. 오늘은 그리로 해서 질러 나갔다. 닥지닥지 붙은 가게로 만들어진 골목을 지나 조금 나가니 푸르른 풀밭과 열대림이 우거진 공원이 나타난다. 건기 열대인데 자연이 이 정도로 풍성한 줄은 몰랐었다. 플루메리아인 듯한 열대 꽃나무들이 풍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이 꽃은 아주 빨간 것, 흰 것 등 여러 색깔과 모양이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조금 더 가니 처음 본은 열매인 듯, 꽃인 듯한 붉은 게 있어 담아 놓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게 호랑가시나무꽃일 확률 87%, 석류일 확률이 12%인가 나온다. 호랑 가시 꽃에 대한 것은 처음 듣는다.

지금 날씨가 약간 더운 듯하지만 이런 날씨가 내게는 오히려 좋다. 한참 가니 강변 길 바로 옆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동상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조심해서 올라가 보았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 셋이 옆에 비치된 향과 꽃을 들고 정중히 동상 앞에 좌정하고 기도 같은 걸 하면서 참배하고 있다. 아무래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이 나라의 성군(聖君)쯤 되는 듯싶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18세기 라오스의 26대 아누봉 왕의 동상이었다. 태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 패하여 감옥에서 옥사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돼 있다. 지금은 동상이 돼, 그 한이라도 풀려는 듯, 두 팔을 메콩강 건너 태국 방향으로 뻗고 있다. 그렇다. 비록 독립전쟁이 승리하지 못할지언정 지도자는 죽음을 불사하고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실을 역사와 국민은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 조선조의 멸망은 어찌했던가. 죽음 불사는커녕 개인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결국 나라를 팔아먹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런 의미에서의 영웅이 부재한 것인가.

그 옆에는 열 살 남짓한 두 소녀가 작은 개를 끌고 둑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샛노란 꽃 무더기가 떨어져 있어서 위를 쳐다보니 탐스럽기 짝이 없는 꽃송이가 새파란 하늘 배경으로 달려 있다. 무슨 꽃일까? 검색해 보았다. 아프리칸메리골드라고 나온다. 나중에 다시 검색해 보니 장미과의 죽단화라고 나온다. 메리골드는 풀꽃이니 터무니없고 죽단화는 나무꽃이니 맞을 확률이 높다.
강가의 길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촬영을 머물고 있고 다수의 키 큰 서양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여유가 있게 오가고 있다. 여기도 삶이 그대로 전해지고 삶의 향기가 묻어있는 지구촌의 한 마을일 뿐이다. 더 동쪽 방향 하류로 걸어 내려가 보았다. 공원이 끝나려는 즈음 작은 못이 보였다. 수면에는 수련 봉오리가 뾰쪽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건너편에는 젊은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못가로 만들어진 운동기구에는 꼬맹이로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까지 와서 운동기구에 매달려 있다. 나도 어깨 돌리기 기구 2개로 연결돼 있는 걸 100번 돌려보았다. 어깨는 괜찮은 듯했다.

6시에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해 놓아서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한참 오다 보니 숙소 막바지에 있어야 할 복덕묘가 안 보인다. 강변에는 일몰을 감상하러 온 많은 방문객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메콩강으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행렬이 마치 오프 로드 경주하듯이 질주한다. 그 먼지가 석양의 붉은 햇살에 어리어 마치 김이나 아지랑이가 어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일몰을 한번 마주하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만나게 됐다. 낙조에 취한 듯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걸 참으며 숙소에 돌아왔다.
아이가 설사기가 조금은 진정된다면서도 아직 쾌차하지는 않은 것 같다. 걱정된다. 아이 보고 앞으로의 일정 예약 등 여행 진행에 너무 신경 써서 그렇다고 격려해 주었다.

저녁 산책은 아내와 둘이서 했다. 오후에 한번 갔다 온 터라 조명이 잘 된 산책길은 쉽게 안내할 수 있어서 좋다. 동상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아내는 붐비는 야시장 가게에 들러 외손녀에게 줄 머리핀을 찾아보았는데 맘에 드는 것이 없어서 안 샀다. 30년도 더 전 우리네 장터 같은 느낌이다. 돌아올 때 다운타운으로 들렀다. 전에 가보았던 카스텔라 빵 가게를 찾아냈다. 푸짐해 보이는 빵 3개 샀다. 다시 2개를 더해서 모두 10만 킵을 냈다. 나머지 2개는 호텔 문을 지키는 두 총각에게 준다고 했다. 아내의 이런 마음 씀이 고맙고 따스해 보여 좋았다. 지지하고 격려해 주었다.
호텔에 와서 욕조에다 물을 틀어놓고 엊그제 세탁 맡겼다가 모래흙이 그대로 풀풀 떨어지는 양말을 다시 빨았다. 다시 내가 물을 다 채워서 반신욕을 30분 정도 하고 나니 기분이 전환되고 발가락 부르튼 것도 진정이 된다.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겹겹이 봉하고 나니 안심이 된다. 오늘은 어찌 된 셈인지 1만 7천 보 이상을 걸었다. 드디어 일주 동안 7만 보를 돌파했다. 최근의 걷기 기록이라 기분이 좋다. 202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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