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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에서의 일상을 스케치하다 4, 딸랏싸오 아침 시장 옆 버스 스테이션 찾아가서 붓다파크 행 버스편을 알아보다

청솔고개 2025. 1. 13. 23:45

 

   청솔고개

 

   2024. 1. 16.

   아이가 설사에 이어 몸살 기운이 있다면서 아침 식사도 거른다. 걱정이다. 젊은이가 이런 모습이니 본인이 생각해도 자괴(自愧)감이 들 것 같다. 우리끼리 아침 먹었다. 아내는 식사하자마자 엊저녁 거의 밤샘했다면서 잠에 곯아떨어진다. 나는 발코니에 나가서 책을 읽었다. 오디차가 마실수록 묘해서 오늘은 봉지 안을 터뜨려보았다. 속에 오디 말린 알갱이가 덜 여문 참깨처럼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정말 귀한 음료다. 이런 여유, 이런 삶을 그동안 얼마나 꿈꾸어왔던가. 점심 식사하기 위해 아내와 둘이 도가니식당에 좀 일찍 가니 마침 앉을 자리가 있다. 쌀국수를 주문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최고의 메뉴로 자리 잡는다.

   오후에 내일 답사할 붓다파크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묵고 있는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았는데 여기서 알 수 없다고 한다. 버스 터미널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혼자 길을 나섰다. 점점 자신감이 붙는다. 혼자서도 이 거리를 스스럼없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오래전부터 꿈꾸던 내 노후 생활이다. 찾아가는 길을 표시한 지도, 마실 물, 길 물어볼 때 사용할 라오스 단어를 준비했다. 오후 5시 지나 출발했다. 더위가 좀 수그러든다. 준비한 지도 한 장이 모든 행동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고 보니 좀 더 자세한 지도 정보가 있었으면 한다.

   딸랏싸오 아침 시장은 찾았다. 그 뒤에 있다는 터미널이 안 보인다. 50대 여자 행인에게 물어보아도 말이 안 통한다. 다른 행인에게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길을 물었다. 내가 짐작했던 방향을 가리킨다. 이제 안심이다. 나중에 여기서는 버스터미널이라 하지 않고 버스 스테이션이라고 하고 그렇게 안내된 것을 확인했다. 내가 버스터미널로 물으니 현지 주민들이 못 알아듣는다. 버스 스테이션 찾아가는 길은 차의 매연과 도로의 먼지, 각종 소음으로 뒤범벅돼 있다. 지나올 때 깔끔하던 관공서 주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버스 스테이션은 짓다가 만 건물 같다. 지저분하고 흉물스럽다. 바닥에는 먼지와 쓰레기투성이다. 기둥과 천정의 표면에는 뭔가가 벗겨진 듯한 모습이다. 전장의 폐허 같다. 그래도 어쩔거나. 여기 도시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교통의 중심 공간인 것을. 이들의 삶이 소중한 만큼 이들의 생활 공간도 인정받아야 한다. 코팅해서 벽에 아무렇게나 광고지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는 차 시간표를 폰에 담았다. 나오면서 보니까 표 파는 곳이 보였다. 여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다시 몇 장 담아 놓았다. 버스 스테이션을 벗어나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다가 길을 건너서 다시 남쪽으로 한 블록 지나서 우회전 해본다.

   해는 어느덧 넘어가고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이 순간만은 이국에서의 홀로서기다.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하기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길을 가야 한다면서. 여행길에서나 인생의 길에서나 혼자 걸어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가 깜빡 넘어가는 것처럼 유(幽)와 명(明)이 달라지는 길을 가야 한다. 곧 닥쳐올 것이다. 일찍이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리하시었듯이.

   홀로 길 떠나보니 지금은 나만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느끼고 싶다. 낯선 길, 오지 않았던 길로 돌아가 보고 싶다. 용기와 자신감 같은 게 생긴다.

   한참 가다 보니 멀리 검은 탑이 보인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 보니 ‘탓 담’이라는 곳으로 ‘종 모양의 오래된 사리탑’이라고 구글 지도에 설명돼 있다. 며칠 전 빠뚜싸이에서 파크슨 중앙 몰까지 걸어 올 때 보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갑자기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1시간 안으로 도착하겠다고 아내한테 약속했는데 걱정이나 하지 않을까 생각됐지만 일단 잠시라도 가보고 싶었다. 현재 시각이 꼭 1시간 지난 5시 55분이다. 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과일이나 꽃이 버려져 있듯이 있다. 한 중년 여인과 남자가 탑돌이 하듯 돌고 있었다. 여기 사람도 우리처럼 뭔가 간절히 불심에 의지하거나 귀의해야 할 사연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조금 더 걸어오니 반가운 조마 베이커리카페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제 다 온 셈이다.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돌면 바로 숙소다. 한 시간 넘게 혼자 걸었던 체험은 앞으로 나의 여정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화해 보려고 했다고 한다. 우리는 바로 준비해서 마사지 받으러 나갔다. 가려고 했던 망고 마사지 샵은 보이지 않았다. 좀 헤매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Wellness’ 마사지 샵으로 들어가 보았다. 태국마사지 하느냐고 물었더니 라오마사지나 같은 거라고 한다. 가격표를 보았더니 60분 발마사지에 12만낍, 전신 마사지는 15만낍으로 ‘Nice’보다 많이 싸다. 일단 부딪쳐 봐야 알 수 있는 법. 조금 있으니 서양 여자 노인 넷이 들어왔다. 둘은 발 마사지, 둘은 전신 마사지 30분 신청한 것 같다. 훨씬 빨리 나간다. 너덧 살쯤 먹은 아이가 막 뛰어다니며 재잘거린다. 외국인 여자가 물어보니 보스의 아이라고 답한다. 받고 난 뒤 느낌은 확실히 비용 차이 그대로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 성의가 많이 떨어져 보인다.

   돌아오면서 식사 겸 맥주 한잔하려고 치킨점을 아내가 찜해 놓은 곳을 찾았더니 벌써 문을 닫았다. 다시 앞으로 나가서 빙 둘러 찾아보아도 그런 곳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구글 지도에다 가장 가까운 곳을 검색해 찾았다. 매일 들르던 야시장 맞은편에 있었다. 실내 홀이 아주 깔끔하다. 화장실 시설도 여기서는 최상급이다. 주문이 부정확해서 닭다리, 감자튀김, 콜라 세트 일인 분만 시키게 됐다. 5천 원도 안 치는 금액이었다. 우리 둘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다시 피자를 주문했다. 작은 것으로 8천 원쯤 됐다. 호텔에 돌아와서 아이 불러서 피자 같이 먹었다. 아이는 아직 쾌차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도 피자는 맛있다면서 먹었다.

   발가락 물집은 거의 다 아문 것 같다. 잘 이겨냈다. 오늘도 욕조에서 물 받아서 빨래 너덧 벌을 한 뒤 다시 몸을 담갔다. 하루 피로가 확 씻기는 것 같다.

   그렇다. 너무 많은 욕심과 편안함을 구하지 말자. 내 마음을 그렇게 끊임없이 가져가야 한다. 내가 평생 그러지 않았던가. 가끔은 발작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아내에 대한 절망적, 부정적 인식은 분명 내 마음을 경계토록 하는 운명의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202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