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8.
청솔고개
병실의 새벽 창 너머 안개가 자욱하다. 지금은 일요일 새벽 5시 30분이다. 일찍이 잠 깨서 침상 등받이를 올린다. 안경 끼고 핸드폰에서 읽을거리를 서핑한다. 척수 카페에 기막힌 사연들이 줄을 잇는다. 인간을 이토록 잔혹하게 내모는가. 10년은 기본이고 20년, 30년을 와상(臥床)하고 있는 환자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가족들의 참상이 눈에 보인다. 10년 장기 환자의 보호자인 아내가 환자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가면 수많은 날파리 떼가 나타난다고 했다. 여러 검사를 해 보아도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심리상담 치료받고 나았다고 이야기하며….
6시가 되니 병실이 부산해진다. 두세 침상에는 기저귀 간다고 난리다. 6인실 병실에서 역한 냄새 따질 여유는 사치다. 체중이 70~80킬로 그람 되어 축 늘어진 남자를 추스르며 기저귀 가는 일이 눈앞의 과제이기 때문에 냄새 운운한다는 것은 팔자 겨운 소리다.
더구나 돌발적인 배변이나 관장으로 여러 차례 이어지는 배변 처리가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나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집에 있는 아내까지 호출했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 간병 때다. 그때 겪어봐서 실감이 된다.
같은 병실의 ㅇ모모 환자 사례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환자다. 어제 오후에 보호자 딸이 지나치게 간섭한다 싶어서 그런지 “×팔 ×...××를 뭐할 ×...” 등의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이러면 대체로 섬망(譫妄) 증세다. 이럴 때는 치매 환자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대응하지 말고 환자의 의사(意思)와 감정을 일단 지지해 주어야 한다. 지지의 말과 관련해서 환자의 주의(主意)를 살짝 다른 데로 돌리면 해결 될 수 있다. 치매 환자 보살핌 매뉴얼이다. 그 처치 이론은 간단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환자의 케이스는 이렇다. 딸이 김치 같은 음식을 급히 먹는다고 억지로 막은 게 발단이다. 위관 삽입(관급 식)을 해제한 지 얼마 안 돼서 기도흡입 위험성이 따른다는 것이다. 뇌를 다쳐서 섬망(譫妄)인지, 아니면 노인성 치매 초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대상을 정상인 취급하고 감정적 대응을 하는 데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딸은 그런 아비한테 순간적인 화가 나서 급기야 손바닥으로 아비의 등을 치는 등 지나친 반응을 보인다. 김치가 담긴 식판을 뺏는다. 딸은 큰소리치며 김치를 반납한다면서 들고 나온다. 그런 행태를 두어 번 반복한다. 딸이 7개월째 간병 중이라고 들었다. 딸의 심신이 매우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자칫 노인 학대로 간주할 수 있다. 이성보다 숨겨진 본능이 분출되고 지배당하는 뇌 손상 환자들에 대한 대응 방식은 이처럼 조심스럽고 까탈스럽다.
나는 지난 이틀 동안 치료실에서 치료사가 내 허리에 찬 안전벨트를 잡아주는 상태에서 지팡이 없이 대여섯 걸음 걸어지는 기적을 보았다. 실낱같은 회복의 기미다.
이제 한창 활동할 40대, 50대 가장들이 전신마비로 와상(臥床)하는 사연이 척수환자 카페에 많이 올라와 있다. 보통 사람들, 즉 비장애인들은 이런 기사에 눈길 한번 안 준다. 본인이나 가족이 운 나쁘게 한 번이라도 이런 엄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그 비정함과 비현실적임을 절감할 것이다. 대부분 그런 비통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환자는 완전하고 절대적인 돌봄에 내몰린다. 보호자는 환자의 종속변수다. 본인과 보호자, 그 가족들의 마음, 시간, 비용 등에 줄줄이 치명상을 입힌다.
현직 때의 동료들이 만나는 한 모임에 대한 내 이야기다. 엊그제 정기 모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게 물어왔다. 아내는 현재 나의 상황을 진솔하게 전달하라고 한다. 그러지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안부를 구체적으로 물어오면 나의 근황을 전할 수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먼저 내 병증을 자백하지 않기로 벌써부터 굳게 마음 굳혔다. 내가 내 병세를 광고하는 일은 싫은 것이다. 내 병세를 홍보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그 8월 정기 모임은 된더위 명분으로 취소됐다. 따라서 나의 자세한 불참 사유를 전하지 않아도 됐다. 다행이다. 11월 모임은 예정대로 한다고 했다.
흉수(胸髓) 2, 3번 이하 가슴, 몸통, 허리, 엉덩이, 하지의 운동신경과 감각 신경이 마비됐다. 감각 신경이 더 손상됐다. 이는 내 병증 진단 내용이다. 나는 척수손상(脊髓損傷) 환자다. 이런 선고를 들은 직후는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싶었다. 일체 아는 체 안 하고,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연락도 끊어버리고 싶었다. 어쩌다 먼저 걸려온 통화로 내 안부나 참석 여부 등을 전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먼저 나의 형편을 이야기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른 모임에도 내 눈과 귀를 다 닫아버리고 싶었다. 묻어버리고 싶다.
암, 전신마비 등 치명적인 질환을 선고받은 환자의 심리 상태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증, 수용 등 5단계로 진행한다고 한다. 이런 나는 지금 몇 단계쯤 될까?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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