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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생일맞다, 치료실 이벤트 3

청솔고개 2025. 1. 16. 22:03

   청솔고개

 

   2024.7.27.

   나는 오늘이 입원 37일째다. 73병동 33호실 6번 병상에서 내 생일을 맞는다. 오늘 여기서 나는 지혜로운 병상 생활의 목표를 찾아냈다. 그것은 내 장애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 작업은 내 필생의 꿈이었던 남미 자유여행 100일 기록물을 대체한다. 또 다른 필생의 업이다. 이제부터는 기록이다. 모든 걸 남기자. 이것만이 여기서 보낸 내 생애 시간을 보상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어제 요역동학검사 결과 배뇨 기능이 살짝 떨어진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러면 방광에 항상 잔뇨가 남아 있어서 방광 및 주변 장기의 보호를 위해 간헐적 청결 도뇨(CIC)를 해야 한다. 바로 카테터 급여를 위한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ㅇ아무개 담당 전공의가 두 차례 방문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내 기분이 일시에 다운된다. 그래서 오늘은 내 생일인데 그동안 애써 희망의 에너지를 끌어올렸던 게 그냥 폭삭 꺼져버리는 기분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요도를 관으로 찔러 배뇨를 처리해야 한다는 현실의 벽이 눈앞을 캄캄하게 한다.

   9시 좀 지났을 때, 아이한테서 비교적 장문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도착해 있는 걸 확인했다. 그 사연이 아이의 기준에 봐서 너무 곡진하고 애틋해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흐려진 시야를 한 체 아내한테 그 카톡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 답신은 좀 정성을 쏟아 꾸며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아부지~ 생신 축하드려요~ ㅋㅋㅋ 맨날 아부지 생신이면 건강하라 이렇게 이야기했던 게 새삼 이제 와서 더 와닿게 되는 것 같아요. 항상 아부지한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오늘 또 열심히 재활하시면서 또 치료받으시면서 보내시겠죠? 평소 같았으면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빵도 사고 축하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버지 ㅋㅋㅋ 다음에 아부지 생신 때는 다들 즐겁게 웃으면서 보낼 수 있겠죠? 힘든 재활치료 항상 아부지 응원해요. 사랑합니다. ᄏᄏᄏ"

   

   아이의 카톡 메시지다. 특히 말미에 '응원하고 사랑한다'라는 말에 내 안에서 잠시 뭔가 뭉클한 게 솟구치는 것 같다. 

   

   “아이야!

   오늘 내 생일 축하 메시지, 정말 고맙다. 늘 그러했지만, 오늘 너의 메시지는 나를 향한 축하, 격려, 걱정의 진심이 내 가슴에 와닿아서 그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더라. 그런 내 모습을 네 어머니가 보고 또 망연해하더라.

   처음 발병했을 때는 내 인생이 아주 비현실적이었고, 마치 꿈을 꾸는 듯했었다. 도저히 내 인식 체계에 수용이 안 된다는 것이지. 아니 그보다 시시각각 밀려드는 통증과 수행해야 할 과제로 정신이 없었다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마구 닥치는 육체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을 잠재우더라. 우리 삶에서 마음의 통증이 심해서 '내 마음은 지옥'이라 하더라도, 육체의 극심한 통증만 하지는 않더라. 이것은 너도 한 때의 통풍 통증 체험으로 체득했을 테니까.

   사람의 한평생을 불가에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했지. 성장 다음 노쇠(老衰), 병고(病苦)는 정해진 수순(手順)이라, 이제 이 나이 돼서 이를 잘 수용해야 한다는 걸 깨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더라. 대부분 사람은 직립보행(直立步行)하다가 언젠가는 주저앉아 와상(臥床)에 이르고…. 그 와상의 시기가 내게는 좀 일찍 도래(到來)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 물론 어떤 이는 10년 후에, 어떤 이는 20년을 보행하다가 나처럼 주저앉겠지만…. 한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것, 조금 일찍 맞이하는 것일 뿐…. 이런 화두(話頭)로 마음 챙김에 나간다. 이 신세계에서 내가 겪은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그 하나는, 이 병원 종사원, 의료진에서 병동의 간호사, 아래 4층 치료실 치료사들의 근무태도다. 그 키워드는 '정성, 진심, 헌신'+배려…. 다른 하는 이 재활병동 환자들의 손상(損傷) 정도가 전신마비 상태에서부터 언어치료만 받아도 되는 케이스 등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이외로 극심한 손상으로 전신마비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응급처치, 수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이후 재활(再活)이라는 더 큰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기간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라, 나날이 희망 고문을 겪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한 말로 그런 환자들을 보고 위안을 삼는다.

   내 생애에 이런 세계에 '내던져져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사실 또한 어떤 기회라 여기고 오늘부터는 환자와 종사자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노트북이 필요한데, 그게 곤란하면 폰에 연결해서 내가 쓰던 휴대용 키보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누워서 여기 폰 키보드 두드리니 손에 쥐가 날 지경이다…. ㅎㅎ

   '이번 통증(痛症)만 물러가거라, 하루는 누구나 24시간, 내 생애에서 넉넉잡아 2년은 그냥 여백(餘白)이라고 간주하자. 조금도 억울해할 거 없다.' 이런 마음으로…. 보낸 37일…. 이제는 극복해 가는 자신감이 많아진다.

아이야,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서로 감사해하는 마음만 간직하자. 1년 후는 또 이날을 회상하며, 내 생일 축배

를 터트릴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이야기는 멋진 안줏감이 되겠지. ㅎㅎㅎㅎ 내가 설 풀고파? 혼자만의 장광설(長廣舌)로 갔네... 긴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 아이야, 내 아이야! 정말 사랑한다. 사랑하고 또 고맙다…."

 

   갑자기 도뇨관에 피가 고여서 놀랐다바로 앞에 간호사실이 있어서 바로 알리고 나니 좀 안심이 되지만 피를 보고 있다는 것은 역시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다간호사가 혈전용해제 사용 때문인지 의료진이 의논 중이라고 전했다이런 게 생일 땜인가이벤트인가.    2025.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