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2024. 7.27.
토요일 오전이다. 아래층 치료실의 분위기는 더욱 내려앉아 있다. 환자들은 표정을 상실해서 마치 밀랍 인형 같다. 그들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는 가끔 터져 나오는 짐승 같은 신음, 웅얼거림, 가래 끓는 끄윽끄윽 하는 소리뿐이다.
나의 손상 정도는 이들과 불과 한 끗 차이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그 미세한 손상 레벨의 우위를 내 마음속으로 내세우게 된다. 그래서 자꾸 차별화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내 생존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그것 같다. 그래도 궁극에 가서 보면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결국 한 끗 차이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치료실 내 치료 침상 맞은편 침상에는 90킬로그램 거구의 50대 젊은이가 축 처져 있는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전 시간에 나를 치료해 준 ㅂ아무개 치료사가 이 환자의 스트레칭 치료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나도 암울함의 연속이다. 그래도 막내 격 ㅂ아무개 치료사와의 치료가 희망을 준다. 이제 로봇 보행치료가 끝나고 지팡이 하나로 걷기 연습, 지팡이 없이 걷기 연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자가호흡, 직립보행, 한 끼 식사를 쉽게 넘길 수 있고 내 손으로 밥을 떠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기적인지 순간순간 체득한다. 보통의 인간이 태생적으로 얼마나 오만하고 불손한 존재인지 여기 와서 깨닫는다.
이 절박한 병원 사회 안에서도 나름대로 일상이 있고 더욱 진솔한 삶의 속살이 드러난다. 이제부터는 내가 본 병실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남겨보고 싶다.
호남이 고향이라는 70대 후반의 ㅇ아무개 환자는 그 천진무구한 눈매 미소가 가장 큰 매력이다. 지나치면서 내가 그를 아는 체 하면 그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천진한, 미소를 짓는다. 이 환자는 이런 미소와 인상 때문에 고령이고 비교적 중증에도 불구하고 치료실에서도 진작부터 인기 맨의 지위를 확보한다. 이분은 또 끊임없이 뭔가 웅얼거린다. 마치 남도소리를 듣는 것처럼 한의 가락마저 느껴진다. 자세히 들어보면 고향 마을 이름, 고향 장터 이름이다. 본인이 사는 주소다. 하나도 틀리지 않고 꼭 같이 종일 반복한다. 뇌 손상에 의한 섬망 증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분은 치료실의 유명인으로 명명됐다.
내 병상 맞은편 70대 중반 환자의 아내인 보호자의 이야기다. 그 보호자는 한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간병한다. 아내는 이 모습이 딱한지 보는 족족 식판도 날라주는 등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 환자도 중증이라 보호자가 잠시도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한다. 지상에서 가장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노노(老老) 케어를 실감한다. 불현듯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의 노부부 스토리가 생각난다. 한 간호사가 이를 지켜보다가 잠시 곁을 지켜줄 테니 보호자더러 그 시간에 설거지도 하고 씻기도 하라고까지 한다. 그 보호자는 지난번 병원에서 조선족 간병사를 썼는데 너무나 진심 어린 간병을 해 주어서 다시 쓰고 싶지만, 병원이 달라서 못 쓰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고심 끝에 조선족 간병사 하나를 지난번 병원에 대체 인력으로 제공하고 그 간병사를 데리고 올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간병은 절실하고 간병과 관련된 인간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다음 주가 되면 보호자 대신 듬직한 조선족 간병사가 대신할 것이다. 그러면 안타까운 아내의 시선도 좀 누그러질 것이다.
40여 년 전 일이다. 교실에서 교통안전 지도와 더불어 장애인 인권 교육할 때 내가 아이들에게 내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장애(障礙)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장애인이다. 다만 한 끗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장애인, 비장애인 이분법은 편견이다. 비록 팔다리가 불편하지 않더라도 안경 쓴 것도, 치과 보철한 것도, 보청기 착용한 것도 모두 장애이다. 장애인이다. 그 장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와서 내가 그걸 내 몸으로 실감한다. 체득한다. 완전, 완벽은 없다. 그것은 존재한다면 '신' 뿐이다. 2025.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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