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그늘 속에 자라는 꽃, 사막에서 크는 풀/그 맥문동이 올봄에는 유난히 더 싱그럽게 새 순을 돋우었다

청솔고개 2020. 6. 20. 21:45

그늘 속에 자라는 꽃, 사막에서 크는 풀

                                                                                                                            청솔고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22년 1개월 전에 이사하였다. 이사하기 전 이 집을 사려고 처음 보았을 때, 대문, 담, 벽이 붉은 벽돌로 붙어져 있어 평소에 내가 살고 싶다고 꿈꾸던 그 스타일이었다. 아치 형 대문에는 붉은 줄 장미를 올리면 좋을 것이고, 담장에는 라일락과 등나무를 심겠으며, 붉은 벽돌 벽면에는 담쟁이를 붙이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그러한 모습으로 달라져 있다.

   나도 어지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격이 느긋하고 미련곰탱이라 할지라도 23년째 한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어지럽게 변화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데 뭔가 뒤처지고 잘못 맞추어나간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여기 이 집에는 우리 가족사가 고스란히 묻혀 있다.

   두 평 남짓한 작은 뜨락의 잡초와 나무 이야기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그야말로 사방이 사과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웰빙 전원주택’이었다. 우리 집 꼬맹이들이 사과밭 사이로 지나가는 기차를 구경하다 보면 그 앞에는 ¹해꼼한 사과 꽃이 한 다발씩 피어나고 있었다. 칙칙폭폭 기찻길 옆 아이가 된다. 가을날에는 빨갛게 익은 홍옥 알 사이로 꼬맹이들은 고사리 손을 흔들면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빠이, 빠이”하던 정경이 그림 같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고, 80년대 후반의 개발 열기로 길가에는 사무실이 하나 둘 생기고, 서쪽에는 대형 물류 창고도 들어서고 급기야 아파트까지 빼곡히 들어서 버렸다. 갑자기 우리 집이 푹 꺼져 보였다. 그 위용이 초라해지고 말았다. 우리 집만 있을 때는, 주변에서 2층집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의 규모였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난생처음 집을 손수 지어보기로 했다. 15년 전 일이다. 2층 증축을 생각하고 직접 조감도까지 그려서 이 분야에 몸담은 친구를 통해서 공사에 들어갔다.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공사 진척은 준비와 설계대로 되지 않았을 뿐더러, 스무 평 남짓 2층을 완성해서 이사하는 데는 무려 7개월이 걸렸었다. 당초에는 넉넉잡아 2개월이면 된다고 했었다. ‘평생에 집 두 번 안 짓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이 났다.

   내가 키가 작아서 위축이 되곤 하였는데 우리 집마저 키가 작아 보여서야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층집을 지어 놓으니까 높이가 좀 있어 보이는 게, 궁기(窮氣)는 면할 것 같았다.

   처음 이사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뜨락에 어린나무와 화초를 심는 일이었다. 감나무, 살구나무, 목련, 라일락, 담쟁이 넝쿨, 등나무, 영산홍, 돌나물, 채송화 등을 잔뜩 심었었다. 그런데 좁은 공간에 밀식을 해서 그런지 감나무는 10년쯤 지나자 허연 뜨물이 끼면서 그렇게 오지게 달리던 감 알도 다 썩어 들어가서 하는 수 없이 한 해 겨울에는 눈물을 머금고 ‘읍참마속(泣斬馬謖)’하였다. 옆의 살구나무나 다른 나무에게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 많은 식구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굳건히 버티어 나가는 나무들은 살아남고 그러하지 못하는 나무들은 베어져 화단 가를 마감하는 버팀목이나 울타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버팀목은 그래도 큰 구실을 한다. 비바람에 흙과 낙엽이 쓸려 나오는 것을 막아준다. 살아서는 꽃과 잎, 열매까지 주던 이들이 죽어서까지 검버섯을 덕지덕지 달고 썩어가면서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서쪽은 틔어져 있어서 바람도 제법 통하고 햇볕도 잘 비치었었다. 초가을이면 이 빈터에는 달맞이꽃이 지천을 이루어 달빛 아래 그 아름다움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글로도 남겨놓았다. 이제 서남쪽 방향으로 9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서서 마치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는 것 같아 답답하였다.

   이런 그늘 아래 식생에는 ‘사철잔디’, 일명 ‘맥문동’ 심는 것이 제격이라는 말을 들었다. 씨도 받아오기도 하고, 야산에서 뿌리도 캐다 심었었다. 그 동안은 더디 자라다가 작년 늦여름부터 연보라, 짙은 보라색의 탐스런 꽃대가 나온다. 마치 난초처럼 청초하게 포기마다 피운다. 실제로 맥문동은 난 종류에 속한다. 가을에는 작은 머루 알 같은 까만 씨알이 한 꽃대마다 여남은 개씩 맺히는데 정성스레 따서 모래에 섞어 보관해 놓았다. 나중에 다시 어딘가에 뿌리고 싶어서였다. 그 맥문동이 올봄에는 유난히 더 싱그럽게 새 순을 돋우었다. 얼마나 대견한가. 그 척박하고 숨 막히는 도심의 한 구석에 반지하실 같은 일조권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살지고 통통한 새순을 올려 보내 주다니.

   그늘 속에서 피는 꽃은 이 맥문동만이 아니다. 그늘이라 햇빛을 더 많이 보려고 웃자라서 키가 훌쩍 커져버린 ²씸냉이 한 무리가 그 옆에 자생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흘러 들어왔는지 스스로 떡하니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떼로 어울려 살면서 연약한 꽃대를 힘들게 부지하면서도 노랗고 작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 살짝 안아주고 싶어진다. 이 어둠 같은 그늘 속에서 어떤 생명력의 기적이 작용하기에 이리 탐스럽게 꽃을 피워내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 꽃의 고향은 저 푸른 들녘이나 산자락이다. 여기서 이렇게 살아남는다고 또 얼마나 호된 고생을 하는지 모른다.

   우리 집 옥상은 그야말로 나의 ³훈잡질하는 장소였었다. 난, 각종 분재 목, 관엽식물, 초본식물, 야생초 재배하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놀이터, 야영 장소 등으로도 활용하였다. 최근에는 수생․수변식물에 관심이 가서, 마름, 마, 갈대, 미나리, 창포, 연꽃, 수련, 쑥 등을 채취하거나 얻어 와서 집에 있는 온갖 독, 항아리, 옹가지, 버지기, 큰 대야 등 담을 것을 있는 대로 찾아내서 심었었다.

   재작년 첫해는 정말 멋진 옥상 수생식물의 생태 공원이 조성되었었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수생식물의 겨울나기는 이 옥상에서 애초 불가능했었다. 바닥이 그대로 흙인 연못이나 강, 개울, 웅덩이는 몰라도 삭풍이 불어대는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은 버틸 곳이 아니었다.

   겨울에 옥상의 수생 식물들은 잔인하게 방치되었었다. 세찬 겨울바람에 모든 게 얼어붙어버렸다. 모두 잊힌 존재들이 되었다. 혹독한 겨울을 이태나 지냈는데도 올봄이 지난 얼마 전에 기적 같은 생명력의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의 말라죽었거나 얼어 죽었다고 여기었던 수생식물들 중 일부가 소생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 차가운 바닥에서 생명의 씨앗을 소멸시키지 않고 생존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생명력은 너무 아름답고 위대하였다. 그냥 안 된다고 그들을 버려둔 나의 소행이 무척 미웠고 그들에게는 또 미안했다.

   하루 생활 중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혼자 ‘이미새’라고 부르는 우리 3학년 아이들이다. ‘이미 새가 되어버려서 잡지도 붙들지도 못하는 열여섯 내기’ 꼬마아가씨들, 그 조잘대고 투덜대고 투정부리는 모습이 영판 주위의 모든 이들을 애타게 하는 작은 새들이다.

   ‘이쁘지만 밉상 투성이’인 이 ‘작은 새’들은 제발 ‘그늘 속에 자라는 꽃, 사막에서 크는 풀’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강인한 생명력만은 빼닮아 가면 좋겠다. 그들이 ‘이미풀꽃’이다. ‘때로는 밉지만 정말 이쁜 풀꽃’처럼 진한 생명의 힘을 닮아가는 나의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위의 글은 2006년 여름 나면서 적은 것임. 지금은 5년 전에 그 집에서 이사를 했음. 여기서는 그 집에서처럼 뭔가 가꾸고, 기르고, 키우는 공간이 없어서 많이 아쉬움.]          2020. 6. 19.

 

[주(注)]

⁰미련곰탱이 : ‘미련퉁이’의 토박이 말

¹해꼼한 : ‘해끔한’의 토박이 말

²씸냉이 : ‘씀바귀’의 토박이 말

³훈접질하는 : ‘장난질하는’의 토박이 말

⁴옹가지 : ‘옹자배기’의 토박이 말

⁵버지기 : ‘자배기’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