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2, 벼락 맞은 소/그 소 코꾼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청솔고개2020. 6. 25. 12:40
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2, 벼락 맞은 소
청솔고개
한여름이나 되어야 우리는 소 먹이러 마을에서 가장 먼 ⁰소두방산 ¹치지거리까지 간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한참 걸린다. 근처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다. 그 위에 서면 오른쪽으로는 화실 못, 왼쪽으로는 골안 못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아직 그 너머까지는 안 가보았다. 지금도 잠결에 가끔 이 봉우리를 헤매다가 그 깊은 화실 못으로 굴러 떨어져 빠지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하루는 비가 많이 올 듯 한 날씨였지만, 너무 더워서 소두방산 ²만디이까지 소 먹이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천둥이 울고 번쩍번쩍 마른벼락이 치더니만 결국은 하늘이 일을 내고 말았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모두들 소이까리를 뿔에 감지 않고 손에 움켜쥐고 풀을 뜯어 먹였다. 비가 더 심하게 오거나 위급 상황이 되면 산을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소 ³코꾼지에도 소 입김인지 빗물인지 흥건하다.
그 순간이다. 한 떼 빛의 덩어리가 저 멀리 우주 같은 데서 우리를 엄습하는 것 같더니만 뭔가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만 들린다. 그 빛 덩어리는 소리도 없이 그냥 빛의 뭉치였다. 말로만 듣던 핵폭탄 같았다. 벌써 우리들은 마치 그 전장에서 평소 훈련에 숙달된 병사들이 된다. 핵폭탄이 떨어지니 실전에 임하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몸을 바짝 낮춘다. 본능적으로 몸이 젖은 땅에 내던져진 개구리처럼 딱 붙어버린다. 바로 옆에 소 한 마리가 벌렁 넘어져 있었다. 5미터 거리도 안 된다. 그 소 코꾼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지는 아직도 약간 버둥거리는 것 같았다. 어안 벙벙, 정신을 수습해서 다시 눈을 뜨고 자세히 보았다.마을에서 제일 잘 사는 박새말⁴뜨기 소다. 그 집 꼴머슴이 벌벌 떨면서 우는지 뭐하는지 넋을 잃고 서있다. 우리 모두 입이 얼어붙어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또래의 꼴머슴은 아직도 소 이까리를 그대로 잡고 있었다. 그 이어진 끝에는 근처 바위덩이보다 더 큰 황소 한 마리가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설마 벼락 맞아 죽은 거?’ 그렇다. 그냥 허옇게 눈자위가 뒤집혀져 있는 거구의 소 한 마리가 누런 배때기를 보이면서 쓰러져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꺼번에 ⁵억머구리처럼 와글와글 울어 제쳤다. 마을 사람들이 아래서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마중하러 산으로 올라올 때까지 우리는 그냥 울음을 합창하면서 소를 몰고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생애 처음 불과 열 발자국도 안 되는 곳에 벼락이 쳐서 소 한 마리가 죽어 나뒹구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 친구들을 만나면 마치 혁혁한 전공을 세워 무공훈장이라도 탄 듯이, 무용담처럼 그 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날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은 것 역시 천운(天運)이다, 조상님의 은덕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은다. 그 벼락 맞은 황소 내장은 어지럼증에 특효라는 소문이 있어 이후 우리 마을로 양 사방에서 구하러 오던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걸 구하러 온 사람들의 기대에 찬 표정을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벼락 맞은 고향의 소두방산을 수 년 전 봄에 아내와 같이 고사리 뜯으러 몇 번 간 일이 있다. 산불이 한 번 지나가고 거긴 고사리 순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다. 산불로 타서 거무튀튀한 나무 등걸 사이로는 연달래 꽃망울이 화사하고 탐스럽다. 그냥 우리 엄마 치맛자락처럼 연분홍으로 포근히 우릴 감싸주고 있었다. 어언 육십 년이 다 지나간다. 2020. 6. 24.
[주(注)]
⁰소두방 : ‘소댕’의 토박이 말
¹치지거리 : 다른 토박이 말로 ‘치거리’라고도 하며 ‘기슭’ 혹은 ‘마루터기’의 토박이 말
²만디이 : ‘마루’의 토박이 말
³코꾼지 : ‘코뚜레’의 토박이 말
⁴(~)뜨기 : ‘(~)댁’ 즉 ‘택호’의 토박이 말. 예, ‘뒷말뜨기’, ‘본동뜨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