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 대한 두 편의 단상
청솔고개
첫째 , ‘백두옹(白頭翁)’의 넋두리 (10년 전 이야기)
눈 덮인 겨울 산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백발이 성성한 현자(賢者)나 고고한 은자(隱者)가 떠올려진다. 그래서 가끔은 겨울 산에 들고 싶다. 그 분들의 품에 들고 싶다. 그러면 나 또한 은자가 되려니. 봄, 여름, 가을철 따라 산은 연륜을 더하고 이제는 태고의 신비를 침묵으로 답한다. 어릴 적 내 증조부님의 풍골(風骨)을 닮았다. 증조부님의 희고 긴 수염이 참 탐스러웠다. 누가 나더러 나이에 비해 흰머리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새치에는 부분 염색이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한다. 바로 내 아내다. 난 그때마다 ‘안질에 안 좋읍네, 피부에 안 좋읍네.’ 하면서 피해 갔다. 허나 정작 속셈은 다른 데 있었다. 난 흰머리가 희끗희끗 세어 가면 왠지 멋있게 보이는 기존 관념을 고수하고 있다. 반백(半白)이니, 은발(銀髮)이나 하는 말들이 주는 뉘앙스가 참 멋져 보였다. 내가 아직 홍안(紅顔)이었을 때 흰머리 장본인들에 대한 막연한 외경(畏敬)심 같은 것이 평생 각인되어 있나 보다.
이제 나 역시 그런 나이에 접어들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왜 백두인가. 흰머리를 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흑두(黑頭)는 아니잖은가?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에 어울리는 머리 색깔이 되어야 진정한 지혜의 표상으로 존경 받을 게 아닌가. 얼굴은 쭈글망태기인데 머리만 새까매지면 어떻게 되나. 얼굴을 다림질로 폈다고 하자. 그러면 목주름은 또 뭐로 다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의 하나가 노인 경시 풍조이다. 노인(老人)을 대하는 시선이 묘하게 꼬여버렸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예로부터 흰머리는 지혜의 표상이 아니었던가. 지구상에 아직도 흰머리 노인 분들을 지혜의 표상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는 중동의 어느 나라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노사(老師)’라 하면 중국어에서는 ‘선생님’이란 뜻을 사용된다고 한다. 젊어서 선생 되어도 노사인 것이다.
이제 나도 몇 시간만 지나면 쉰하고도 아홉수다. 쉰아홉이라는 나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제야(除夜), 나의 청춘은 다했노라고 비탄해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밤새 거리를 떠돌면서 나의 이십대는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비감해하던 때. 지금은 거기에서 곱절도 더 지난 나이다. 설은 나이 아닌가. 설은 나이가 절망은 아닐 거다. 나는 이제 노인인가. 고령자인가. 나라마다 노인을 정하는 기준이 좀 다르다. 우리나라는 몇 살부터 노인이라 칭하는가. 노인을 부러워하고 노인의 목소리, 노인의 꿈, 노인의 힘, 노인의 지혜를 인정해 주는 사회가 진정 건강하고 멋있는 사회다. 한편 노인들도 자신의 몫을 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인 공경 풍조가 회복될 것이다. 경로정신이 회복되어 노인의 권위와 지위가 복권될 것이다. 백두옹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회 풍조를 하루 빨리 회복해야만 진정 건강한 사회가 실현된다. 저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겨울 산처럼, 그 산의 흰 눈 속에는 뭇 생명소가 깃들어 있다.
둘째 , ‘흰머리 소년’ (5년 전 이야기)
ㅎ대리가 느닷없이 나에게 붙어준 별명은 '흰머리 소년’이다. 나는 정말 평생 내게 붙여진 별명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 별명을 붙여준 ㅎ대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ㅎ대리, 그 장본인을 만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딱 5년 전이다. 퇴직 후 1년 가까이 지난 그해 여름도 다 끝나갈 무렵에 나는 뜬금없이 5개월 예정 단기 사원으로 팔자에도 없는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인근 원전에서 그 회사의 창고 자재 부품 정리 사업을 위해 특별히 계약직 사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응시, 인생 이모작 시기에 나는 내 평생한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에 운 좋게 입사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인 일은 컴퓨터의 특별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창고 물품 재분류와 재배치하는 하는 일이었다. 그 때 나보다 열 살 아래인 ㅎ대리가 8개월 전에 먼저 창고 지게차 요원으로 입사해 있었다. 그도 계약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나와 죽이 잘 맞았다. 그는 인생선배격인 나를 잘 따랐고, 나도 그를 직장 선배로 진심으로 이해해주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때 같이 입사한 계약직은 대학 재학 중인 20대 둘, 대학 졸업인 30대 하나 등 4명이었다. 50대인 ㅎ대리를 합치면 5명이었다. 구성원의 나이 차가 많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화합도 잘 되었고 일도 참 재미있었다. 이른바 노장청(老壯靑)의 조화였던 것이다. 그 ㅎ대리가 나의 일머리 풀어나가는 것, 그리고 나의 소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평가한 나머지 그런 별명을 붙여준다고 몇 차례나 말해 주었다. 처음엔 공치사로 들었지만 진성성이 들어 있었다. 나로서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5개월도 미처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멋지고 새로운 나의 인생체험이었다. 내 생애 이모작에서 노익장(老益壯)의 자신감을 선사한, '흰 머리 소년'을 지어준 ㅎ대리, 그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의 원 전공은 타워크레인이었는데, 지금도 전국 어느 최첨단 토목, 건설 현장에서 끝까지 책임지는 엔지니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울러 틈만 나면 호소하듯 내게 풀어놓았던 것, 현장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험난하기만 했던 노조운동의 활동상과 애환, 소시민 생활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무게에 관한 스토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2020.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