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 살 전후사(前後史) 5, 나의 안태(安胎)고향집
청솔고개
우리 집은 동네 공동 우물 옆에 있었다. 그래서 삽짝이 두 개나 되었다. 큰 ⁰삽짝은 사랑채 앞쪽 잿간과 ¹마닥 사이에 나 있었다. 굵고 굽은 나무 등걸로 테두리를 메우고 대나무와 싸리, 송판으로 엮어서 만든 그 삽짝을 여닫으려면 제법 큰 힘이 필요했었다.
²도장과 장독대 사이로 난 작은 삽짝은 바로 마을 공동우물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이건 큰 삽짝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졌다. 지게 지고 겨우 들어 올 수 있을 정도 너비다. 새벽에 가끔 오줌이 마려워 ³정낭으로 향할 때, 우물가에서는 두런두런하면서 가끔 ‘하하, 호호, 깔깔, 껄껄…….’ 웃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쌀 씻고 나물이나 채소, 푸성귀 헹구기 위해 모인 아낙네들의 소리다. 아낙네들은 여기서 온갖 마을 소식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우물가는 그들만의 사랑방이고 대화방인 셈이다. 어느 집 어른이 위중하다든지, 누가 시집을 간다고 날 받아 놓았다든지, 누구하고 누가 서로 눈 맞고 배 맞았다든지 하는 모든 풍문은 여기서 만들어지고 뒤섞여 때로는 보태지고 커진다. 심지어 만들어지기도 한다. 새벽 잠결에 이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내 유년의 새벽은 밝아온다.
언제부턴가 우리 마을에 사람이 살게 된 후 이 우물은 마을 생명수가 되었다. 샘물이 얼마나 지천(至賤)이었던지, 새벽에 누가 제일 먼저 우물에 볼일을 보러 오면 물이 우물가를 철철 흘러넘치는 신기한 현상을 보게 된다. 우물물이 그냥 넘쳐서 개울로 버려지는 것이다. 그 물은 아깝게도 아래 우리 집 채전 밭 끄트머리 ⁴미나리깡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 우물은 ⁵다리박이 필요 없이 그냥 *바가치로 물을 푸면 된다.
언제 누군가가 잉어 새끼 몇 마리를 낚아서 이 우물에 넣어 놓은 사실이 기억된다. 이놈들이 한참 자라서였다. 새벽에 물 푸러 왔다가 무심코 바가지를 우물 속에 넣었을 때 시커먼 이놈이 그냥 전광석화처럼 휙휙 하며 사람을 아는 척 하고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기도 했었다.
이 마을 우물가는 마을 아낙네들이 뭔가를 만들어 먹으려고 갖가지 식재료를 삭히는 곳이기도 했다. 속에든 게 북적북적 괴면서 퀴퀴하거나 ⁶사고한 냄새가 등천을 하곤 했었다. 단지나 독에든 ⁷꿀밤과 메밀은 주로 묵을 쑤기 위해서 삭히는 중이었고 감자나 칡은 전분을 얻기 위해서였다. 독에든 보리가 파릇파릇 싹이 터서 단술 담그기 위해 ⁸질금이 다 되어 가면 누구 집에 큰일이나 제사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거다.
아낙네들은 집이나 들에 삼삼오오 모여서 일하다가도 ‘아이고 벌써 ⁹보쌀 씻으러 갈 때가 다 됐네.’ 하고 손을 털고 행주치마를 고쳐 ₀끼리고 이 우물가에 모여 들면 하루해가 저물어 가는 ₁저녁답이 다된 거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거의 붉은 질땅이다. 장마가 오래 계속되거나 폭우가 쏟아지면 아낙네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진흙이 고무신이 엉겨 붙어 벗겨지기 일쑤다. 물동이는 이고 아이는 업고 왼손엔 짐이라도 들었을 땐 거의 거북이 걸음이다. 그렇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미끄러져서 독이나 물동이, ₂버지기를 깼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오죽하면 외말 여자들은 평생 진창을 디딘다고 발가락이 다 오그라붙어 버렸다는 말이 떠돌까.
5년 전 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전답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의 안태고향 마을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이 있었던 그 집터에 세워진 마을 회관에서 나오는 가댓₃뜨기를 만났다. 그분은 느닷없이 “그 때는 너무 고마벘지요” 하시며 아버지 손을 덥석 잡으셨다. 자기 아들 중 하나가 아주 어렸을 적인데, 그 우물에 빠져서 몸이 물속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때 아버지가 우물로 나오다가 이를 보고 건져주셨다고 하신다. 아버지를 아들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몇 차례이고 만날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나는 물론이었지만 아버지도 금시초문 같으셨다. 그 안어른도 이제 아버지와 연세가 거의 같으셔서 꼬부랑 할머니 그대로이지만 만날 때마다 보은의 인사를 잊지 않는 그 총기는 살아있으셨다.
서너 발 옆 길 밑에는 그 때 마을 공동우물이 그대로 있다. 다만 덮여져 있는 우물 뚜껑에는 열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 아래 있었던 채전 밭도, 미나리깡의 기억은 삼삼했지만 그 흔적은 출입로로 된 시멘트 포장에 묻히어 찾을 길이 없었다.
아버지와 그 안어른, 그리고 나의 안태고향 집 등을 모아서 생각하노라니 불현 듯, 김남조님의 이런 시구가 떠오른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 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 중에서) 2020. 7. 3.
[주(注)]
⁰삽짝 : ‘사립문’의 토박이 말
¹마닥 : ‘마답’의 토박이 말
²도장 : ‘광, 곳간, 고방’의 토박이 말
³정낭 : ‘뒷간’의 토박이 말
⁴미나리깡 : ‘미나리꽝’의 토박이 말
⁵다리박 : ‘두레박’의 토박이 말
⁶사고한 : ‘시큼하거나 신맛 나는 냄새가 풍기는’의 토박이 말
⁷꿀밤 : ‘도토리, 상수리’의 토박이 말
⁸질금 : ‘엿기름’의 토박이 말
⁹보쌀 : ‘보리쌀’의 토박이 말
₀끼리고 : ‘두르고’의 토박이 말
₁저녁답 : ‘저녁때’의 토박이 말
₂버지기 : ‘자배기’의 토박이 말
₃(~)뜨기 : ‘(~)댁’ 즉 ‘택호’의 토박이 말
*바가치 : '바가지'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