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이후 해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다보니 많은 무리가 따랐었다. 이 방식은 적어도 한 세대 전쯤, 한마을에 대소가가 함께 살던 농경시대는 적절하였겠지만 급변하는 오늘날 산업정보화사회에서는 맞지 않다. 우리집안은 4대 봉제사(奉祭祀)라 해서 고조부모님 이하 기제사는 모두 8회나 되었다. 이런 스케줄로 진행하니 입제 날의 제사 준비에서 파제(罷祭) 날의 처리까지를 감당하는 집안의 며느리들은 한두 시간 자면 많이 자는 셈이었다. 문제는 맞일을 하던 우리 내외에서 나타났다. 철상(撤床), 음복(飮福)에다 마지막 설거지 끝내면 새벽 4시가 다 되었다. 잠은 거의 잘 수가 없었다. 다음날 근무에 지장이 많았었다. 아내와 나의 입에서 몇 차례나 당시 제사 파제 일에 장거리 통근하다 당할 뻔한 아찔한 졸음운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