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고개 드디어 기차가 출발했다. 햇살 때문에 가린 커튼 사이로 쪽새미, 박물관, 남산이 휘익 휘익 스쳐간다. 마치 내 70평생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남녘으로 떠나는데 햇살은 그대로 역광으로 내리꽂힌다. 모두들 햇살을 피하려고 커튼을 꽁꽁 여미어 대니 밖을 내다볼 틈새 하나 없다. 그래도 차가 덜컹대면서 커튼 사이로 언뜻언뜻 산록과 들녘의 풍광이 스치어간다. 나는 폰을 바짝 그 틈에 대고 바깥 풍정을 담아본다. 자꾸 뒤로만 남겨 두고 멀어져가는 겨울 들녘이 마치 내 한생 같이 겨울 역광에 서릿발 돼 바스라진다. 겨울 풍경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사람 발자취 하나 안 보이는 어떤 간이역을 지나고 있다. 철길 양 옆에 조성해 놓은 대나무, 소나무들이 휙휙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게 잿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