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生涯)의 아이들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4/몇 편을 나를 향해 읽어주다가 그냥 울먹인다

청솔고개 2020. 8. 28. 23:48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4

 

                                                                 청솔고개

 

   2014. 8. 28. 목. 비.

   아이들과의 이별의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렇게 절실하게 여겨질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 동안의 힘든 일, 서운함, 아득함이 이 기간에 다 묻어지는 것 같다.

   나와 헤어짐에 섭섭해서 눈자위가 벌개진 아이들도 있다.

   2-2 마지막 수업이다. 반 아이들은 전원이 나한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닐에 씌어진, 다른 모양의 편지지에 깨알 같은 사연을 가득 써서 먼저 실장이 낭송을 한다. 실장이 몇 편을 나를 향해 읽어주다가 그냥 울먹인다. 뒤로 외면하면서 마무리하였다.

   내가 가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고맙다.”

   나의 떠나감이 이처럼 조용하면서 절실한 반향을 일으킬 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아이들의 이름 하나라도 더 익히고 그들과의 어울리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을 조금이라  도 더 보탰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그들에게 작은 기쁨 하나라도 더 주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일.

 

   다음은 31명 반 아이들의 사연 중 한두 편 소개한 것이다.

 

   [To. ㅇㅇㅇ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입니다. 이제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왠지 편지하나하나 소중히 간직해 줄 것 같아서 마음을 담아 쓰려고 해요ㅎㅎ^▽^ 예쁘게 봐주세요.~♡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업 중간중간 어휘력퀴즈, 넌센스퀴즈, 정말 즐거웠어요. 선생님께서는 여행도 멋있게 다니시고 마당도 예쁘게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서 부럽고 존경스러웠어요. 딱딱한 수업이 아니라 글도 한번 써보고 생각도 해보면서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선생님은 왠지 몇 년 뒤 시인 아니면 작가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늘 인자하고 따뜻하신 선생님!! 벌써 이렇게 헤어진다니 너무 아쉽고ㅠㅠ 더 잘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주신 사랑의 반도 못되는 편이지만 저희 기억해주시고 기뻐해 주세요ㅎㅎ 꼭 다시 한 번 만나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2014年 8月 28日 From ㅇㅇ]

 

   [청솔고개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2학년 2반 ㅇㅇㅇ예요^^!

어제 선생님과의 이별 소식을 전해듣고 너무 갑작스러워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선생님과 함께했던(짧아서 아쉽지만) 정말 즐거웠던 지난 1학기를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ㅠㅠ 선생님과 함께 졸린 눈 부벼가면서 했던 넌센스퀴즈, 매시간 기다려지던 선생님의 희망편지, 신기하고 재밌는 우리지방 토박이말 배우기가 정말 그립고 생각날 것 같아요... 선생님의 ‘마지막 아이들’ 중 한 명으로서 1학기의 문학시간을 매 시간 성실하게 보낸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또 선생님만의 박학다식함이 엿보였던 멋진 수업을 들은 마지막 학생이라 자랑스럽기도 해요! 전에 국사모 카페를 보다가 선생님께서 수능을 치는 고3언니들께 쓰신 편지글을 보고 선생님의 따스함과 사랑에 감동 받은 일이 있었어요. 혹시나 시간이 나실 때 저희에게도 따뜻한 편지 한 통 올려주세요♡♡ 헤어짐은 마냥 슬픈 일만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야기한다는 말이 있어요. 한 평생 몸담아 열정을 바쳤던 교단을 떠나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 또한 없을 수는 없겠지만, 느끼기 힘들었던 색다른 자유를 만나시리라 생각하미당! 선생님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스승의 은혜 감사합니다.♡

                                     2014년 8월의 마지막 주 제자 ㅇㅇㅇ올림]

 

 

   청소시간에 국어과 후배 교사들이 책 네 권하고 교동 법주를 종이가방에 선물로 담아서 정보실에 찾아 왔다.

   전번 송별 모임에서 내가 남미 자유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멋진 남미 자유 여행 바라는 뜻에서, 남미 여행 관련 단행본을 준비했고 이번 추석 제사상에 쓰라면서 전한다고 그 뜻을 이야기한다.

   고마운 마음이 눈물겹다.

   두고두고 갚아 나가야 하겠다.

 

   오늘 내가 갚음으로 내는 식사.

   아마 학교에서는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어제 나를 불러주었던 두 분 후배 교사와 식사하면서 못다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모든 게 하나씩 하나씩 끝나간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의 이 교직 생애 마지막 수업 주, 마지막 식사 초대처럼.

   모두들 시간 내 줘서 고맙다.

                                                          2020.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