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生涯)의 아이들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2/청솔고개의 고별 희망편지를 띄우는데 내 목소리가 좀 떨린다

청솔고개 2020. 8. 26. 22:43

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2

                                                 청솔고개

 

2014. 8. 26. 화. 비

오늘로 앞으로 남은 출근 날짜는 4일.

대학 동기 하나로부터 연락 왔다. 뜻대로 명예퇴임하게 된 걸 축하한다는 인사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늘 고2-8, 8교시 방과 후 문학 시간, 고별 강의.

정해진 진도 대략 마친 후, 첫 이별 인사.

청솔고개의 고별 희망편지를 띄우는데 내 목소리가 좀 떨린다.

‘내 생애의 아이들’은 숙연한 모습이다.

눈시울을 붉히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하나씩 마감되는 거다. 삶이란 모두. 나도 하나하나 그 아이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내 가슴에 담으려고 해 본다.

오늘 저녁에 우리학교 국어과 후배 교사 일곱이 베풀어주는 환송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초등 및 대학에서까지 후배가 된 1학년 담당인 이 후배가 미리 같이 가자고 연락을 준다. 참 고맙다. 이제 이런 후배를 다시 어디서 만날까?

퇴근하면서 오늘도 어제에 이어 하나하나씩 짐 싸서 차에 싣고 현 거처를 비워 나간다.

초등 겸 대학의 그 후배가 우리 집 앞까지 와서 날 태우고 식당으로 동행해 준다.

오늘 저녁에도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식당 도착하니 다른 후배 교사들도 벌써 다 와 있었다. 1학년 담당 이 후배, 김 후배, 2학년 담당 박 후배 노 후배, 3학년 담당 신 후배, 주 후배, 황 후배 교사 등 모두 일곱의 풋풋하면서도 실력파 낭자군단이다. 정말 하나같이 반듯하고 진중하고 참한 모습들이다. 어디 내 놔도 최고의 교사진용이다. 자랑스럽다.

막걸리 한 잔씩 하고 나니 좀 분위기가 유해진다. 후배교사들이 나에게 마지막 도움 되는 말씀 하나라도 남겨 주시라고 주문한다.

나는 나의 야학 시절까지 포함하면 나의 교단 세월은 모두 42년 3개월이다. 대학 2년 6월부터 시작이니 그런 계산이 나온다.

그간의 내 교직 생활을 떠올리면서 불꽃같은 한 순간 한 순간을 말한다. 나의 이야기가 후배교사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그래도 이제 내 생애에서 이런 후배들은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 배려와 그 고마움에 나의 목이 메고 만감이 교차한다.

식사 후, 강변의 찻집에 갔다.

새로 꾸민 찻집의 분위기에 모두들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차 한 잔씩을 샀다

통유리 벽 너머 비가 세차게 퍼붓는다.

내 마음이 비감해진다.

내가 아껴놓았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들 후배 교사들과 같이 밤새워 함께 대화하고 싶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이건 내 욕심, 내 기분일 뿐이다.

배려 차원에서 먼저 청해 오지 않으면 안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끝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중 제법 연장축인 박 후배는 이번이 나하고 근무가 두 번째다. 박 후배가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쉽다고 한다.

그래 이렇게 헤어지는 것, 나도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박 후배 교사는 전체 송별회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이제는 헤어짐이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덧없는 미련과 허망한 감상은 피하는 게 더욱 극적이고 아름다운 헤어짐일 것이다.

문득 이형기님의 ‘낙화’가 떠올려 진다.

나도 이제는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지켜나가야 할 것 같다.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2020.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