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1
청솔고개
오늘부터 5일 동안 나는 내 생애의 마지막 수업을 했다. 6년 전의 일이다.
그 6년 후 오늘 다시 그날의 기록을 더듬어 본다.
오늘 이 순간, 내 생애의 아이들이 내게 준 많은 이야기와 기억의 정표들을 다시 서랍에서, ‘내 생애 깁기’ 폴더에서 다시 불러내 본다.
아이들이 내게 건넨, 길고 짧은 편지, 엽서와 메모의 사연을 하나하나 모두 정성스럽고 소중하다.
가만히 다시 읽어본다.
그런데 그 아이의 사연과 스토리, 그 이름과 그 아이의 얼굴이 이제는 이어지지 않으니 안타깝다.
그 아이한테 참 미안하다.
편지를 쓴 그 아이 하나하나에게 나의 답신은 언제쯤 할꼬?
2014. 8. 25. 월. 비가 세차게 내림
‘내 생애의 마지막 주’, 아니 ‘내 생애 교직의 마지막 한 주’에 접어들었다.
새벽부터 잠을 깨우던 비가 연신 주룩주룩 내린다.
‘8월의 마지막 주’
어느 시구에서처럼, 어느 에세이 한 줄처럼, 이 빗소리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아니 처연(凄然)하게 한다.
이 또한 안톤 슈낙이 아닌, 나를 슬프게 하는 횔덜린의 시인가, 아이헨도르프의 가곡인가.
아니면 40년도 더 전 한 대학병원 병동 붉은 벽돌 옆 벤치에서 혼자 읽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悲歌)’인가.
내가 그 때 왜 그리 비가를 좋아했던가.
그 여름의 힘들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문득문득 물컹물컹 떠오른다.
이제 정말 마지막 한 주인가.
이게 교직 생애가 아닌 ‘내 생애의 마지막 한 주’라면?
만약에 내 생애가 마지막 한 주만 남았음을 확실히 안다면 난 뭐부터 생각하고 뭐부터 실행할까?
우선 오늘 2교시 2-1 문학 수업 준비부터 확인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다.
이런 준비 언젠가는 정말 사랑스럽고 아쉬워지는 때가 오지 않을까.
나는 학교에서 내가 그리 좋아하는 문학을 평생, 실컷 강의했다.
이제 그 문학 강의로 내 교직의 대미를 장식하니 어찌 행복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 주 각 반의 마지막 시간에, 한 반씩, 한 반씩 나의 고별 강의를 나의 인생 강의로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나는 나의 문학 작품을 통해, 나의 문학 강의 시간을 통해서, 나의 문학작품과 문학 강의 내용이 탑재된, 2001년에 개설, 14년째 활동 중인 “국어사랑모임” 카페에서 내 인생을, 내 절망과 구원을, 내 분노와 억울함을, 내 수치와 용기 없음을 고백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 고백하지 못한 게 더 많다.
수업에 필요한 USB를 찾다가 집에 두고 와서, 아내한테 전화해서 찾아 놓아라, 부탁해놓고 비 맞으면서 단숨에 달음질쳐서 가져오는 걸 보면 천생(天生) 난 선생인가 보다.
오늘 고2-1 문학수업에서는 아직 나의 마지막 수업임을 알리지 않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정말 마지막 수업이 한 번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난 평소 이별의 의식은 결코 길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그리 실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오늘은 아주 늦게 퇴근했다.
마지막 짐 정리 때문이다.
이것저것 챙겨보다 보니 그리 되었다.
책상 위, 서랍 속에 내 문학과 인생의 자취가 아직도 많이 묻어 있다.
떠나는 자는 뒤돌아보지 말 것이며, 흔적을 남기지 말라 했다.
집을 떠나거나 비우는 사람은 방안의 쓰레기통을 잘 비우라고 했다.
혹 돌아오지 못할 경우 쓰레기통으로 그를 평할 수도 있다더라.
오전에 억수같이 쏟아붓던 비는 그쳤다. 2020.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