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청솔고개
나는 5년째 청소년들을 상대로 상담활동을 하고 있다.
나의 내담자는 이른 바, 학교부적응 학생들이다. 사례별 활동을 통하여 파악한 그 원인은 참으로 다양하다.
이런 상담의 목적은 좀 특이하다. 이른바 뉴 스타트(New Start), 학업중단숙려제(學業中斷熟慮制)라는 프로그램의 명칭에 그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다분히 국가인적자원 양성이라는 국책 사업적 성격도 보태져 있다.
나는 상담의 근본 목적을 내담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걸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통하여 생애 전 주기에서 생활 능력 및 인생과제 수행에도 불편함을 줄여주는 것이다.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를 포함한 가족 등 주변에서 겪는 마음의 어려움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그 문제는 제대로 살피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뉴 스타트 학업중단숙려제 상담 프로그램은 진행하다보면 이런 상담의 본연의 취지에 적절하지 않는 행정편의주의나 성과주의로 진행한다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는 물론 상담원인 나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내담자 소속 학교 당국의 인식이 작용된 결과일 수도 있으며, 본 상담프로그램 본연의 성격에서 초래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한 실례로 아직도 상담을 학교 생활지도의 보조 수단이나 양육 혹은 훈육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지도의 목표는 바람직한 생활과정과 성장발달의 지도인데 비해 상담은 구체적 생활과제의 해결, 즉 감정, 사고, 행동양식의 변화라고 명시돼 있다. 나아가서 성격 구조의 심층적 변화를 목표하는 정서적 문제의 해소인 심리치료와는 또 구분이 되는 것이다.
상담에서 다루는 문제는 장애적 긴장, 불안, 비능률적 행동습관, 비성취적 관념 등인데 비해 심리치료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나 임상심리전문가가 다루는 신경발달장애, 정신분열 스펙트럼 및 기타 정신증적 장애, 양극성 및 관련 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강박 및 관련 장애, 외상-및 스트레스 사건-관련 장애, 해리장애 등을 포함한 이른바 ⁰DSM-5에 규정된 20개의 주요한 범주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개인 상담의 근본 목적은 헌법의 행복 추구권 정신과 그 궤를 같이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상담의 활동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저 출산 시대에 미래 사회를 담당할 국가 인적자원 관리 차원에서 보면 국가의 고민과 관련된 이런 점이 이해가 된다.
이런 취지를 살려서 상담원으로서 나는 충분한 심리적 지원과 생활과 과제해결을 제공한 후 내담자의 학교복귀나 검정고시 응시 등을 포함한 거취와 진로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하도록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상담은 시한을 정해놓고 조급하게 그 결과를 기다리면 결국 성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학교 당국이나 국가의 관련 책임자들이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궁극적으로는 실패로 가기 쉽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학교폭력이나 심한 따돌림으로 피해 당사자가 된 어떤 내담자는 상담을 포함한 학교 당국의 조처로 이런 환경적 요인이 제거되었다하더라도 당시 입은 심리적 타격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내담자는 원활한 학교복귀와 학업지속의 상태로 되기까지는 아직 한참 먼 것이다. 그런 케이스가 많다. 아주 오래가는 케이스도 있다. 자퇴를 고집하거나 자퇴에 내 몰린 내담자는 학교적응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로 말기암환자다. 이런 내담자에게 상담을 몇 회기 받았다고 순순히 학교복귀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 내담자로 봐서는 거의 딴 나라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는 내담자의 일상복귀까지 충분한 심리적 지원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허약해져 있던 마음의 힘을 채운 뒤 등교 등 일상 복귀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상담에서 심리적 지원은 궁극적으로 내담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 행복 추구에 그 목적이 있다.
다음 도종환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인 것이다. 바깥에서 세차게 바람이 불러오는데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클 수 있는가. 그렇게 자라지 않고 또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인가. 억지로 버티다가는 꽃 대궁이채 부러질 수도 있다. 그러니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들의 흔들림을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하자는 게 이 작가의 메시지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흔들리며, 또 흔들려서 꽃대가 부러지기 직전의 나의 아이들을 찾아 나서면서 나의 왕진가방인 상담보따리를 챙기고 그들의 꽃대를 부여잡아 주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2020. 7. 16.
[주(注)]
⁰DSM-5 :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을 말함. DSM-5는 2013년 5월에 발행되었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임상가와 연구자가 사용하고 있음. 위의 8개 범주의 장애 외에도 신체증상 및 관련, 급식 및 섭식, 배설, 수면-각성, 성기능, 성 불편증, 파괴적 충동통제 및 품행, 무질-관련 및 중독, 신경인지, 성격, 성도착. 기타 정신 관련 장애 등 모두 20개의 주요 범주로 나누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