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3
청솔고개
2014. 8. 27. 수. 비.
0교시에 2-9 아이들과 정말 마지막 수업. 아이들이 흑판에 가득 차게 잔뜩 석별의 인사를 써 놓았다. ‘사랑해요, 청솔고개 선생님’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아이들이 더러 많이 침울해 하는 표정이다. 이런 아이들의 반응에 고마워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홍ㅇㅇ 아이의 표정이 너무 안쓰럽다. 평소에 수업시간에 나의 수업에 잘 호응해주고 특유의 구수한 유머로서 좌중을 즐겁게 해 주던 아이가 오늘은 의기소침한 게 안 돼 보였다. 그런 그 아이한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뭔가? 지금은 없다.
마치고 나오면서 나를 송별하는 정표로 흑판에 메모해 놓은 글귀를 폰으로 담아 놓았다.
이 반 아이들 30명 전원이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떠나는 나에 대한 석별의 정을 담아 정성스럽게 꾸민 합동 편지를 전해준다. 몇 장의 종이에 편지 메모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 가운데는 “청솔고개 선생님, 사랑해요”를 하트 모양으로 크게 아로새겨져 있다. 이 석별의 편지를 받으니 이제 정말 나의 한 막이 내리는 것을 실감한다.
다음은 그 중 하나. 위에 소개한 홍ㅇㅇ 아이의 쪽지다.
[ㅇㅇㅇ쌤!!!! 저 내 사랑청솔고개에요! 쌤 너무 슬퍼요ㅠㅠㅠㅠ 가지마세요ㅠㅠ 그동안 너무 죄송했어요ㅠㅠ 그리도 너무 감사드려요. 저 이름도 알아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쌤 잊지 않을게요. 보고 싶을 거예요ㅠ 그 동안 열정적으로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했어요. 쌤!! 집 꼭 찾아갈 게요! 저 잊지 마시고 스승과 제자의 포옹을 거부하지 마세요……. ♡ ㅋㅋㅋ 사랑합니다 ♡♡♡
2학기를 같이 마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요. 그래도 지난 반 년 넘게 저희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사랑해요 선생님♥♥♥♥]
또 한 쪽지.
[선생님♥ 청솔고개의 막내딸입니다. ∽ㅋㅋ선생님께서 '막내들아! ' 하실 때 뭔가 모를 느낌이 들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아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서 눈물이 계속 나더라구요. 즐겁고 좋은 기억만 간직하시고 저희들의 실수는 귀엽게 봐주세용^^ 퇴직 후에도 늘 건강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감동 주시는 그런 선생님이실거죠? 좀 있으면 ‘선생님’이란 호칭도 떠나시겠지만 언제나 선생님은 최고였습니다. 감사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고맙습니다.]
오늘 특별활동 시간이 있어 그 시간에 NIE반 아이들과 만나서 이별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 시간에 영어어휘력시험이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이들도 각별한 정이든 아이들이었는데 참 섭섭하다. 대개 똑똑하고 명민한 아이들 또래다. 토론 선수로도 활동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 아이들과 단 몇 마디라도 나누고 헤어졌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그 한 시간을 못 보내서 아쉽다. 나중에 아이들이 있는 각 교실에 돌아가면서 인사라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냥 자연스레 흘러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마음을 접었다.
한 후배 여교사가 나에게 식사 초대를 했다. 참 섭섭하다고 하면서, 내가 속한 교육정보부 후배 부장교사도 함께. 두 번째 같이 근무하고 비교적 연륜이 비슷해서 평소 잘 통한다고 했는데 역시 잊지 않고 불러줘서 고맙다. 세월 지나면 이런 동료들과의 한 마디 대화, 한 끼 식사가 참 소중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이 모든 게 갈수록 소중하게 여길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 후배 부장 차로 식당에 갔다.
그는 사람 좋기로 소문난 순혈 교사다. 해마다 부활절 즈음해서 전교생에게 자비로 계란을 삶아서 나눠준 행적으로 유명 인사다. 자비로 친환경 쌀뜨물 비누를 제작해서 아이들에게 보급하기도 하고 좋은 컴퓨터 실력을 발휘해서 개개인 사진이나 학교 전경을 넣은 사진으로 만든 책갈피나 엽서도 나누어준다. 이런 좋은 후배교사도 두고 가야한다. 훗날 세월이 지나면 더욱더 그리워할 것이다.
자꾸 비감해진다. 소주 한 병을 거의 내가 다 마셨다. 더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미련과 아쉬움을 좀 남겨두는 것도 좋을 듯.
후배 부장 교사는 나를 초대한 선생님부터 내려주고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끝까지 고마운 후배교사 ㅇ부장이다.
오늘도 계속 비가 많이 내린다.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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