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5
청솔고개
2014. 8. 29. 금. 갬.(전편)
오늘, 내 교직 생애 마지막 일주일의 끝날. 비감해 진다.
뭔가와 영영 헤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걸 실감한다.
0교시 2-3 교실에서는 6교시에도 수업이 또 있으니 그냥 지나갔다. 1교시 2-1, 수업을 30분 정도 하고 나머지 시간에 마지막 ‘청솔고개의 희망편지’를 읽어 주었다.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 수업일. 생각하니 나 스스로 또한 만감이 교차한다.
아이들도 모두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이다. 아이들이 스승의 노래를 부른다. 다른 반 수업도 있고 하니, 내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좀 조용히 불러달라고 손짓으로 주문한다. 아이들은 눈치 빠르게 따라 준다. 고맙다.
케이크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모두 교탁 앞으로 몰려나온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케이크를 그만 떨어뜨려버렸다. 내 바지를 거쳐서 땅에 살짝 처박힌다. 내가 바로 수건을 꺼내서 바지를 닦아낸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아이들은 어쩔 줄 모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듯이 사진을 찍고 내 폰도 줘서 찍도록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작은 해프닝이다.
2-1 아이들아, 고맙다. 내가 부담임이라고 해서, 너희들에게 해 준 것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
이제 나는 아이들한테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교실을 떠난다. 마치 표표히 나부끼는 키 작은 깃발이 된다.
다음은 아이들 모두가 건넨 편지 중 2,3편을 소개해 본다.
[국어선생님 ♡ooo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누군지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이름은 ㅂㅇㅇ이라고 해요. 아무튼 선생님 떠나시는 게 너무 아쉽고 슬퍼요ㅠㅠ 아직 본 지 1년도 채 안 돼서 헤어지려고 하니 마음이 아파요ㅠ^ㅠ 제가 늘 수업시간에 자고, 막 선생님 말씀 잘 안 들어서 죄송했어요... 저희를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저희가 자면 깨워주시고 게임도 같이 하고... 스트레칭도 가르쳐주시고... 진짜진짜 너무 선생님께 감사하고 고마워요! 진짜 선생님의 ‘네가 하면 넌센스, 내가 하면 난센스’ 이거 정말 잊지 못할 거여요!! ㅎㅎ 또 늘 나눠주시고 하시던 ABC초콜릿! 진짜 좋은 추억이 되고 선생님을 떠올릴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 같아요! 선생님 교직을 떠나시더라도 언제나 건강하시고 즐겁게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인사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ㅇㅇ올림-]
[청솔고개 ooo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부담임을 맡아주셨던 2학년 1반 ㅂㅇㅇ입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지난 6개월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아요. 지난 6개월 간 수업시간에 좀 더 충실하게 임하지 못했을까, 선생님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자지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때문에 더욱 아쉽습니다. 선생님과 체육대회도 의~리!!하게 함께 해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생님 수업을 더 이상 못 듣는다는 것이 가장 슬퍼요, 저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학기 초부터 선생님이 너무나 좋았는데♡ 저희를 생각해주는 것도요.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인생이야기 더 들어보고 싶은데 선생님의 지난 교직인생이야기는 정말 꼭 들어보고 싶은데 내일 해주시려나요?ㅎㅎ 인생이야기 뿐만 아니라 좋았던 건 넌센스퀴즈, 초콜릿, 청솔고개의 희망편지, 잠깨는 박수, 체조 하나~둘 체조 구령까지 너무너무 생각나고 그리울꺼에요. 하지만 슬퍼하지만은 않을꺼에요. 내일은 선생님의 교직인생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실 뜻 깊은 기쁜 날이기도 하니 기쁜 맘으로 응원하고, 선생님께서 열심히 수업해주셨던 것처럼 저도 저 할 일을 열심히 해 멋진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당장 선생님이 안 계실 월요일부터 선생님이 많이 보고 싶은 게 분명하지만ㅠㅠ 씩씩하게!!ㅎㅎ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출근으로 시작하실 하루가 아닌 새로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좋은 일만 가~득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너무 존경스럽고 멋진 선생님으로 해 주신 뜻 깊은 수업들, 그 외 모든 것 감사했습니다. 저에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을 꺼 같네요♡♡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쁩니다! 사랑합니다♡♡♡
2014. 8. 29. -ㅇㅇ올림-]
[ooo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0번 ㅂㅇㅇ라고 합니다ㅎㅎ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은퇴 소식을 듣고, 2학년 1반 일원이라는 이름을 빌려 이렇게 몇 자 적게 되었네요. 축하의 편지가 아니라 이별의 편지라는 점에서 매우 아쉽고 슬픕니다ㅎㅎ.. 비록 선생님을 뵈고 함께 한 지는 반년 남짓이지만, 그 길고도 짧은 동안, 사소한 것부터 수업, 중요한 것(말씀)까지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즐거웠어요. 여러 퀴즈들, 초콜릿, 청솔고개의 편지 외에도, 수업시간 중간 중간 말씀해주시던 삶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들도 즐거웠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업을 하시며 아이들을 위해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꼼꼼히 가르쳐 주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고 존경스러웠어요. 열성적인 모습도. 선생님과 함께 체육대회, 축제도 보내고 싶고, 야영, 추석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께 대화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많이 아쉬워요. 이렇게 헤어짐이 다가오니 글쓰는 것도, 살아 가면서의 여러 이야기도 왜 진작에 좀 더 나누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의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국사모를 남기셨으니, 글 통해 앞으로 연락이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ㅎㅎ
선생님, 정말 반년 동안 감사했고, 수십 년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부디 은퇴 후에도 몸 건강히 잘 챙기시고, 풍요롭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빌어요! 사랑해요!!♡-ㅇㅇ올림-]
지금 6년 뒤, 그 때의 '내 생애의 아이들'을 더욱 잊지 못하겠다. 참 그립고 보고싶다.
2020.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