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수업’ 그 5일의 기억 7
청솔고개
청솔고개의 마지막 희망편지
‘내 생애의 아이들’, 그 마지막 아이들이여!
팔월의 마지막 주입니다.
계절은 벌써 가을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은 이 청솔고개의 마지막 희망편지라서
여러분들을 ‘내 생애의 마지막 아이들이여!’ 하고 불러야 할 것 같군요.
여러분하고 같이 하는 마지막 서신!
그래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1975년 3월 1일 자로 병아리교사, 청년교사 청솔고개는 경북 한 복판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39년 6개월을 한 길로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 한 주, 이렇게 여러분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게 인연이라고 하는가봅니다.
선인들께서 옷깃이 스치는 인연을 ‘겁(劫)’이라는 단위로 설명하더군요.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하며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천상의 선녀가 천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내려올 때 날개옷으로 집채 크기의 바위를 한 번 쓸고 올라가기를 되풀이해 그 바위가 모래알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라고…….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이란 말은 참 흥미롭습니다.
옷깃을 한 번 스치는 것은
오백겁의 인연(因緣)이 쌓여서 가능하다고 하는데
부부는 칠천 겁, 부모자식은 팔천 겁, 스승과 제자는 일만 겁의 인연이라고요.
특히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인연은 억지로 맺어지는 게 아니라고요.
전생의 공덕(功德)이 매우 큰 인연이므로
만들어진 인연을 함부로 꺾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이란 뜻.
법화경에 있는 말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그래서
생자필멸(生者必滅)이지요.
그 인연을 소중히 가꾸기 위하여 열심히 애쓰면
소중한 인연을 조금 덜 놓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내 생애의 마지막 아이들이여!’
착하고 현명한 여러분들 때문에 내 교직 마지막 학기는 참 행복했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문학과 인생을 맘껏, 실컷 대화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좋았습니다.
이제 이 청솔고개는 여러분들에 대한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다른 기억은 정말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다 두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참 배려심이 있었고 그래서 서로서로를 잘 헤아려 줄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같이 가야지!!!’하는 나의 소리에 참 잘 호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단언하건데,
‘같이 가야지’, ‘같이 가자 야들아!’이것 하나만 잘 가꾸고 지켜 나가도 여러분들은 평생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들! 오로지 이 한 마디,
살아가면서 마음 많이 다치지 마세요.
마음 다쳐서 힘들어 하지 마세요, 제발!
혹 마음을 좀 다쳐서 힘들면 바로 치유하세요.
그러기 전에 스스로 굳게 마음을 단속하고 다지세요.
그러면 정말 행복해질 것입니다.
‘내 생애의 아이들이여!’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2014. 8. 29.
2020.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