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가을날의 동화 3, 선방(禪房)에서 (1/2)/내겐 다만 끊임없는 유리(遊離)와 조락(凋落), 허망(虛妄)의 계절일 뿐

청솔고개 2020. 9. 9. 23:34

가을날의 동화 3, 선방(禪房)에서 (1/2)

                                               청솔고개

 

   뒷산에서 부엉이 울음이 처연(悽然)하다. 경내에는 시나브로 지는 풋감의 무거운 소리가 유난히 밤의 적요(寂寥)를 더해준다. 이 먼 타관(他關)에서 맞이하는 이 계절이 벌써 이태 째다.

 

   내 서안에는 태곳적 유인원처럼 생긴 수석(水石)이 나를 지켜보고 있고 벽에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이 붙어 있다. 벌써 10여 년째 그림자처럼 내게 붙어 다니던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영인본(影印本)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 한 번씩 쳐다보기만 해도 많은 힘과 위안을 받곤 했었다. 책상 한 모퉁이에는 반쯤 쓰다 남은 원고뭉치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다.

 

   뒷산 언덕너머에 초롱별이 떠오르면 거짓말처럼 하루해가 조용히 접어지고 나는 하루 일을 마치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이 거소(居所)를 찾아든다.

 

   이처럼 한적(閑寂)한 거소이지만 가끔은 귀한 손님을 맞이하곤 한다. 학교에서 나와 동행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제일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내 방을 보고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이, 대견해 하고 어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 귀한 손님들을 정중히 맞이한다. 따뜻이 얘기해 주기도 하고 한 잔의 우유로 이 어린 손님들을 대접한다.

 

   눈망울은 순진(純眞)과 무구(無垢)로 빛나고 있다. 이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퍼뜩, 나도 결코 내 삶이 그토록 고적(孤寂)하거나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하곤 한다.

   이곳은 내 고향에서 약 네 시간 거리, 군(軍)을 마치고 학교로 다시 오다 보니, 난생 처음 와 보는 산 설고 물 설은 곳. 우리 도에서 제일가는 산골, “육지에서의 고도(孤島)”라고 불리는 곳. 논이 없는 이곳의 주 생산물은 고추, 담배, 약초 등 주로 특용(特用) 작물이다. 봄이 되어 좀 낮다싶은 산비알은 온통 뒤덮이는 비닐로 장관을 이룬다. 달빛 아래 내려다보면 좋게 말해서 비단 자락을 드리워놓았다고나 할까. 뒷산 팔수(八水)골 너머에서 내려다보면 산비알은 번쩍이는 비단 자락 틈으로 고춧대가 탐스럽다. 산록에는 이름 모를 들꽃과 산나물이 지천을 이루고 계곡은 눈 녹은 물이 수정(水晶)처럼 정결(淨潔)하다. 이곳에 정(情) 두고 지내는 데 좀은 익숙해졌다.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한다. 동쪽으로 향한 교사는 이제 막 지려는 해 기운에 불그레하게 물 들린다. 노을로 신비스럽다. 낮에 시원스레 내리 퍼붓는 빗줄기 뒤끝이라, 상큼한 초가을 저녁이다. 선연(鮮姸)히 타오르는 저녁놀은 알 수 없는 아름다움과 슬픔으로 내 가슴을 저민다.

   아이들은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운동장에 구석구석 모여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야구 글러브와 방망이가 활기차다. “탁”하고 한 아이가 친 공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병풍(屛風)처럼 막아선 뒷산 높이만큼이나 날아오른 공에도 붉은 기운이 번져나고 있다. 아이들의 작은 얼굴에도 그들의 함박웃음만큼이나 화사한 저녁놀이 피어오르고 있다. “얘들아! 4번 타자다!”하고 웃으면서 내가 끼어든다. 힘을 주고 어설프게나마 힘껏 휘두른다. 좀처럼 맞아주지 않는다. ‘파울볼이라도 좋다. 맞아만 다오. 제발!’ 속으로 기원하는데, 그 순간 ‘탁!’ 맞는다. 공이 날아오른다. 코스모스, 샐비어 담장 너머 풀밭으로 날아가 떨어진다. 보랏빛으로 알뜰히 피어나는 들국화 대궁이가 휙 흔들린다. 아이들이 공을 찾으러 들어가면서 흔든 것이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꽃 더미에 묻혀서 꽃이 되어버린다. 나는 바람에 날리는 수선화(水仙花)처럼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내 손길도 어둠에 묻힌다.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 들어선다. 아이들에게 밝은 날 다시 보자 하면서.

 

   나는 지금 나만이 이르는 선방(禪房)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찾아 준 아이들도 모두 돌아가 버린 텅 빈 선방은 그들의 온기로 포근하다. 스물여덟 번째 나의 가을맞이, 철 든 후, 계절이 지나가고 세월이 흘러간다는 인식을 하게 될 때부터는 여남은 번쯤 맞이하는 이 가을인가? 그 때마다 아득하고 막연하게나마 이 가을은 정말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과 기대를 다짐해 본다. 가을이라는 얼굴은 수줍은 소녀처럼 좀처럼 그 속내를 내게 보이지 않고 덧없이, 그야말로 가을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다. 나의 그 ‘가을’은 결코 내 손에 잡히지 않고 새처럼 날아가 버리곤 하였다. 사슴 꿈을 꾸었는데 이쁜 암사슴이 그 안개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듯이. 그런 묘한 기분이 이 가을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가슴 뛰게 하다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쌍무지개를  쫓아가는 소년의 마음처럼.

 

   그래, 누가 가을더러 결실과 사랑의 계절이라고 하였던가. 내겐 다만 끊임없는 유리(遊離)와 조락(凋落), 허망(虛妄)의 계절일 뿐.

                          [위의 글은 1980년 초가을에 쓴 것임. 같은 제목의 2/2편이 이어짐]

 

                                                                            2020. 9. 9.

 

[주(注)]

⁰산비알 : ‘산비탈’의 토박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