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호주 뉴질랜드 기행 보고서/제7일, 오후, 뉴질랜드 남섬 맥킨지 평야, 테카포 호수, 오마라마 초원, 크라이스트처치 보타닉 가든, 2016. 9. 28. 수

청솔고개 2020. 10. 24. 01:20

호주 뉴질랜드 기행 보고서/제7일, 오후, 뉴질랜드 남섬 맥킨지 평야, 테카포 호수, 오마라마 초원, 크라이스트처치 보타닉 가든, 2016. 9. 28. 수

                                                                                                                  청솔고개

   11:48, 맥킨지 평야를 지난다. 분지 형상이다. 양 도둑을 지키기 위해 이 벌판이 개척됐다고 한다. 양 옆은 더욱 광활한 황무지다.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가 서든 알프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동행은 옆자리에서 계속 눈 감고 있다. 조는지, 자는지, 생각에 잠겨 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잔뜩 흐린 날씨가 조금씩 맑아지고 있다.

   12:05, 왼쪽은 천문대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해발 700m에 위치하고 있는 세계 3번째 별자리 관측하는 곳이다. 왼쪽이 테카포 호수다. 맥킨지 분지에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3개의 호수 중 가장 크다. 나머지 둘은 푸카키, 오하우 호수다. 이 호수의 물을 밀키불루라고도 한다. 빙하에 깎인 암석 가루가 녹아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는 또한 아름다운 호수와 산의 전망을 배경으로 선한목자의 교회가 위치하고 있어 더욱 많이 알려져 있다. 양몰이개동산도 명소다. 이런 건 내게 별 흥미가 없다. 좀 더 가니 이번엔 얼룩덜룩한 소떼들을 만났다. 열심히 풀을 뜯고 있기도 하고 어떤 데는 일렬로 줄을 서서 이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펑퍼져 누워서 쉬고 있는데 송아지들이 옆에 같이 있다. 또 안개가 서리고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가축들의 몸에서 김이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좀 추워 보인다. “翠湖軒酒家, Jade Palace CHINESE RESTAURANT”라는 중국식당 간판이 눈에 띤다. 호숫가의 식당을 적절하게 표기한 것 같다.

   13:41, 크라이스트처치 186km 남았다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뜨였다. 들에 특이하게 까만 털을 한 양 몇 마리가 눈에 뜨인다. 14:55, 크라이스트처치로 가기 위해서 좌회전 했다. 다시 만난 켄터베리 대 평원에 깔린 철로에 기차가 지나가는 걸 목격했다. 기차의 앞뒤가 엄청나게 길어보였다. 15:03, 지나가면서 깍두기나 두부모처럼 정지된 방풍림이 아주 특이해 보였다. 높은 산허리를 감아오를 땐 꼭 흰 눈이 덮여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지나온 오마라마라는 갈색 초원 구릉지대이다. 이곳의 풍광은 대개 이런 패턴이다. 즉, 광활한 초지, 크고 작은 호수, 퍼석 말라 보이는 풀이 자란 지대, 마른 풀조차도 없는 사막 같은 지형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섞여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다시 나타난 호수가 앞서 본 호수의 뒷부분인지 아니면 새로운 호수의 시작인지는 설명을 들어서는 가늠이 안 된다. 그만큼 다양하고 광활한 자연과 식생의 파노라마다. 몇 시간 지나가면 그때야 여행자를 위한 휴게소나 가게, 식당이 나타난다.

   16:30, 드디어 크라이스트처치 외곽 지역에 도착했다. 대지진 이후 도시의 중심이 분산돼 버렸다. 이 도시는 인구가 45만 명으로 남섬에서 두 번째다. 한국의 이민자도 2,0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남북섬 전체 통틀어 인구 1위 도시는 오클랜드다. 16:45, 보타닉 가든을 들렀다. 홍매화가 흐리고 저물어가는 날씨에도 더욱 아름다움을 뽐낸다. 주변이 확 환해지는 것 같다. 흰 동백꽃, 튤립꽃밭, 아주 키 큰 나무에 달린 샛노란 개나리꽃 같은 처음 보는 꽃나무, 백목련, 자목련 꽃도 탐스럽고 또 고귀해 보인다. 나머지 절반 이상은 아직 어두운 겨울색이다. 또 비가 쌀짝 내린다.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파커의 후드를 꺼내 덮어쓴다. 이런 비 뿌리는 음산한 봄 저녁에 꽃이라도 보니 마음이 밝아지고 더워지는 것 같다.

   17:20, 보타닉 가든을 나와서 박물관을 가려고 했는데 늦어서 입장을 못했다. 저녁은 한식으로 하고 호텔에 들어왔다. 오늘 하루의 파노라마를 되새겨 본다. 잊을 수 없는 하루 같다. 뉴질랜드 남섬의 마지막 밤이 깊어 간다.

                                                                                                                     2020.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