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旅情)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둘째 날(1/2)/ 양옆으로는 큰 창고 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그림자가 운하에 선명하게 비친다

청솔고개 2020. 11. 14. 00:15

홋카이도의 늦가을 자작나무 숲길, 둘째 날(1/2)

청솔고개

새벽에 호텔 방 창을 통해서 보니 오늘은 쾌청한 날씨다. 행인들은 두툼한 초겨울 날씨 옷차림이다. 외투에 마스크를 쓴 사람도 더러 보인다. 좀 떨어진 곳 나카지마고헨의 늦가을 풍광이 언뜻 보인다. 은행나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둘렀는데도 겨우 9시 20분쯤 호텔을 나설 수 있었다. 공원 샛노란 은행나무 앞에서 아내를 찍어 주었다. 오늘은 지하철을 이용할 요량으로 역으로 내려갔다. 오오도리역까지 표를 끊었다. 이런 건 아내가 순발력 있게 잘 한다. 다른 나라에서 처음 표 끊어서 타보는 지하철, 모든 게 신기하고 난생 처음 체험이다. 흥분되고 설렌다. 내가 하고자 하는 걸 실행에 옮겨 본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 아닌가. 역에서 내려 몇 차례 행인들에게 지도를 보여 주면서 서툰 일본어로 물었다. 친절히 답해준다.

홋카이도 옛날 역 청사가 보인다. 250만 개의 붉은 벽돌로 지은 거라고 소개돼있다. 오래된 건물의 역사만큼 나무도 오래돼 보인다. 내부 전시된 자료에는 아내도 별 흥미를 못 느끼기에 그냥 지나쳤다.

홋카이도 시계탑을 찾아야 되는데 도통 방향 감각이 안 선다. 이리저리 물어서 갔다. 1878년에 만들어져 변함없는 종소리를 들려주는 삿포로의 상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담한 모습이다. 우리가 볼 땐 그만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보이지 않는 이런 유물들을 소중히 여기는 이 곳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삿포로 역으로 가야한다. 또 물었다. 이럴 땐 가져갔던 나침반을 활용했더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삿포로 역 청사는 위용이 대단했다. 이러다 보니 만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도 이곳의 지리와 환경에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삿포로 역사에 들어가서 오타루 행 JR표를 끊었다. 아내가 이런 일은 참 잘 한다. 이제 “오 겡키 데스카?”의 대사로 유명한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그 오타루다. 솔직히 이와이 슈운지의 이 “러브레터” 영화는 내게 큰 감동은 준 것 같지 않았다. 기차는 마치 우리나라의 동해 남부선처럼 완행하면서 느릿느릿 여유를 지닌다. 좀 가니 바다가 보인다. 해변엔 아무 것도 없고 텅 비어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즐비하게 서 있을 횟집이나 찻집 하나 없다.

미나미오타루에 도착했다. ‘미나미’는 ‘南’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차에서 내렸다. 또 방향을 모르겠다. 멈칫멈칫하다가 역에 있는 관광안내원 같은 노인에게 물었다. 물론 지도를 들이대면서. 뭐라고 설명해 주면서 지도를 포함한 자료를 잔뜩 우리에게 안겨 준다. 우리나라말로 된 지도도 있다. 이 걸 보니 좀 알겠다. 메르헨 교차로를 찾아서 오르골 당 본관에 들어갔다. 오르골에 대해선 아내나 나나 별 흥미가 없지만 그래도 오타루를 대표하는 명물이라고 하니 들어가서 좀 둘러보고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별의별 오르골이 현란하고 앙증맞게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부터는 사카이마치도리라 해서 길 양 옆으로 각종 상점이 즐비하다. 생초콜릿 전문점 앞을 지나니 판촉 하는 아가씨들이 초콜릿을 시음하라면서 권한다. 공짜니까 받아먹었다. 맛이 괜찮았다. 쓱쓱 스쳐가려는데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六花亭’ 일본말로 “롯카테이” 육각 꽃의 정자, 六花는 삿포로의 상징인 눈을 가리킨다. 2층에 올라가서 이곳의 명물인 슈크림을 사서 점심 대용을 했다. 입에서 녹아버리는 맛이다. 빙설 맛 같기도 하다. 커피는 공짜라서 좋다. 길 떠나다가 배고프거나 맛있는 곳이라 소문난 데가 있으면 이렇게 퍼질러 앉아 먹고 또 떠나는 것이 자유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아내도 만족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또 고맙다. 우선 시간에 쫒기지 않고 느긋해서 좋았다.

‘韓國鐵道大學’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은 우리나라 젊은이 7,8명을 여기서 보니 반가웠다. 아내가 “좋은 대학 다니고 있네요.” 하고 말을 걸어 줬더니 고맙다고 한다. 다른 가게들은 우리에게는 별 흥미가 없는 대상이었다.

여기서 유명하다고 안내되어 있는 가라수점[유리세공점] 공방 한 군데를 들렀다. 안에서 공원 한 사람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척 한산해 보여서 별 다른 느낌은 없었다. 아내가 관심 두고 있는 곳은 이곳에서 정말 유명하다고 하는 초밥집이다. 그것도 가격이 적절한 회전초밥집을 찾아 헤맸다. 드디어 “和樂[와라쿠]”이라 붙여진 초밥 집을 발견했다. 일단 알아 놓았으니 저녁은 여기서 스시로 먹기로 하고 또 걸었다.

이상하다. 내가 암만 걸어도 다리가 저리지 않다. 여행 기분에 내 고조된 기운이 허리와 하체에 운기, 혈기,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가.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 있어서 여기 운하거리인가 싶었는데, 좀 떨어진 곳에 한 무리의의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중국인 여행객인 듯하다. 이곳이 많이 알려진 오타루 운하다. 양옆으로는 큰 창고 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그림자가 운하에 선명하게 비친다. 운하와 창고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에 투영된 스토리와 배경영상이 더 중요할 터. 아무래도 영화 ‘러브레터’를 한 번 더 보아야 할 것 같다. [2014. 11. 11.화. 맑음] 202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