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의 노래'와 '가는 봄 오는 봄'
청솔고개
올해도 4월 중순이 지난다. 나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는 산과 들의 풀이 파릇파릇해지는 이때부터는 벌써 우리는 모두 어린 목동이 될 준비를 했어야 했다.내 어린 시절, 소 먹이러 산에 올라갔을 때 이야기다.
⁰소이까리를 뿔에 감아놓고 ¹미땅에 앉아서 동네 두세 살 형뻘들이 가끔 성내에 갔다가 당시 딱 한 군데 있었던 극장가서 보고 온 영화 줄거리를 자랑스레 떠벌리면 우리는 마치 선진 신문물이나 접하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흥미 있게 들었었다. 그 때 영화의 주제곡으로 들었던 '원일의 노래', '가는 봄 오는 봄' 등 제목은 내가 커서 알게 되었고 그냥 마을 형들 따라 별 뜻도 모르고 흥얼흥얼 했었다. 소 먹이러 간 데의 키 작은 소나무 밑에서 누군가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발장단에 맞추어 같이 불렀던 그런 노래들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평생 나에게는 도반이 되었다.
다음 이야기. 한여름 밤 저녁 식사 후, 우리 집 뒷길에는 벌써 마을 머슴애들과 장정들의 두런두런 하는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한 무리는 하모니카를 불면서 발바닥으로 길바닥을 꿀리면서 장단을 맞춘다. 그 울림이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노래 한가락이 신명나게 풀어진다. ‘해운대 엘레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울어라 열풍아…….’ 등은 단골 레퍼토리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가수라는 직업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직업이라고 여겼다. 아니 난 전생에는 가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봤다. 나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살면서 가능하다면 가수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 하였다. 아니, 필연코 후생에 나는 가수로 태어날 것이다.
청년 시절에는 70년대 식 외국 팝송, 우리 포크 송, 외국 영화음악, 클래식 등에 관심 가져보았다. 그런 일종의 겉멋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우리 전통가요를 평생의 노래 친구로 삼아 왔다.
최무룡님의 ‘원일의 노래'와 백설희님의 '가는 봄 오는 봄’은 그 영화의 절절한 배경 스토리를 녹여낸 노랫말의 속내를 알게 된 뒤부터 봄만 되면 흠뻑 빠져 즐겨 듣곤 하던 옛 노래다.
*원일의 노래(최무룡)
1) 내 고향 뒷동산 잔디밭에서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 순정을
옥녀야 잊을소냐, 헤어질 운명
차가운 밤하늘에 웃음을 팔드라도
이제는 모두 잊고 내 품에 잠 들어라.
2)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지만
앞으로 올 즐거운 내일을 믿고서
옥녀야 잊어다오. 지나간 운명
내 몸이 변하여도 모두 다 비웃어도
다시는 안 떠나리. 내 품에 잠 들어라.
가는 봄 오는 봄(백설희)
1) 하늘마저 울던 그날에 어머님을 이별을 하고
원한의 십년 세월 눈물 속에 흘러갔네.
나무에게 물어봐도 목 메이게 물어봐도
어머님 계신 곳은 알 수 없어라. 찾을 길 없어라.
2) 비둘기가 울던 그날에 눈보라가 치던 그날에
어린 몸 갈 곳 없어 낯선 거리 헤매이네.
집집마다 찾아봐도 목 메이게 불러봐도
차거운 별빛만이 홀로 새우네. 울면서 새우네.
3) 그리워라. 어머님이여. 꿈에 젖은 그 사랑이여.
옥이야, 내 딸이야, 다시 한 번 안겨 다오.
목이 메어 불러 보네. 한이 많은 옛 노래여.
어두운 눈물이여, 멀리 가거라. 내일을 위하여
해마다 봄을 맞고 또 떠나보내는 이 계절에는, 눈을 감고 어린 날들을 떠올리고 있으면, 고향집 넓은 대밭 울타리 너머 뒷길을 손뼉과 발바닥 장단에 맞춰 부는 하모니카 소리, 노랫소리의 울림이 귓전을 맴돌고, 마을 뒤 산골짜기에 멧새, 뱁새 울음 사이로 메아리쳐 흐르는 듯하다. 비운의 그 영화 주인공들의 한 맺힌 흐느낌이 퍼져 흐르는 듯하다. 2020. 4. 19.
[주(注)]
⁰소이까리 : '소 고삐'의 토박이 말
¹미땅 : '묘지', '묘터'의 토박이 말
*원일의 노래 : '원일'은 영화 <카츄샤>에서 배우 최무룡이 맡은 남자주인공의 이름이며 그 영화의 주제곡 중 하나가 '원일의 노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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