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를 심으며
-할머님 전상서
청솔고개
미나리 포기 포기 임의 숨결 아른아른
한평생 큰애 기별 굽이굽이 맺힌 설움
홀연히 보고 싶단 그 한 말만 남기셨소
어이 설은 이별인가 서른여섯 해 긴 세월
왜 이리도 그 겨울부터 일자 편지 한 장 없어
한 서린 큰애 모습 눈에 삼삼 귀에 쟁쟁
죄 없는 시절 탓에 그리 질긴 한 목숨
원수로다 원수로다 몹쓸 놈의 난리가
그 겨울 마포 형무소 푸른 수의 큰애 얼굴
한 평생 흙벗 삼아 허겁지겁 살아온 몸
쇠진한 몸 남은 기력 오열하신 큰애 이름
몽매의 북녘 길 터진 좋은 세상 못 보셨소
하루에도 열두 번 안아주고 얼려주고
첫손자 꼭 껴안고 요리 조리 보시고는
그래도 가슴 에인 한 끝내 못 풀었소
분꽃 한 잎 청쑥 한 뿌리 들녘에도 가슴에도
임 잠 드신 고향 마을 양지 바른 언덕받이도
가신 임 전생에 그린 큰애 함께 편안히 잠드소서
가신 임 무덤가에 저물어 가는 가을 황혼
술 한 잔 올리면서 눈물 떨기 뿌리옵지만
동구 밖 어리운 모습 하늘 가도 구름가에도
[위 시는 1987년 봄에 쓴 것임]
2020.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