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詩) 술 한 잔 앞에 두고 /앵두꽃 이우는 그 밤마다 이름 없는 죽음을 몽상했었지

청솔고개 2020. 4. 4. 18:21

술 한 잔 앞에 두고 

 

청솔고개

 

사막의 빈 마음을 가슴에 안고

오늘처럼 봄비 내리는 날에는

어딘가 선술집에라도 가서

낮술에 취해 실컷 울어나 봤으면

이승의 인연한 모든 들에

복사꽃 같이 화사한 마음으로 연연해 하지만

언젠가는 한 줌의 연기로 화할 것을

실가지로 너울대는 넋은

창변에 맺히는 빗방울만 보아도

곧장 홍수 같은 울먹임을 터뜨릴 듯

착한 아내와 같이 뜰에 라일락 한 그루 심고

땀 흘려 장미 넝쿨 올리면

화사한 봄날 그 어느 날엔가 꽃은 피겠지

情恨에 가슴 에이는 아내여

참꽃 빛이 화안히 한 밭으로 흐르던

아련한 유년 시절을 손잡고 뛰놀았었지

갓 서른 물풀 같은 마음으로 그 無明의 줄기

덧없이 부여잡고

술 취하면 순수와 영웅을 떠벌리고 해도

유년의 꿈결 같은 평화경은 더욱 아득하고

열이레 전 불면의 봄밤마다

댓잎 속 천년 무덤 아래 핀

앵두꽃 이우는 그 밤마다 이름 없는 죽음을 몽상했었지

술 한 잔 앞에 두면

내 열이레 해 동안 찢기고 헤진 넋이

소금기 저벅이는 사막으로 내팽개쳐 진 듯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은 가슴마다 누구나 다 정말이지

한줌의 소금이 채워져 있나 보다

백 필 명주실로

이승에 인연한 업들이여

눈물뿐, 허망뿐 

그 진한 빛깔로 스러지고 싶어

                                        [위의 시는 1985년 봄 어느 날 쓴 것임]                         

2020.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