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나의 편지

먼 산에 아지랑이 1/ 먼 산에 아지랑이 품안에 잠자고 산골짝에 흐르는 물 또다시 흐른다

청솔고개 2020. 4. 2. 23:58

먼 산에 아지랑이

                                                                                                                                                                                                                                                               청솔고개

먼 산에 아지랑이 품안에 잠자고 좋~다

산골짝에 흐르는 물 또다시 흐른다. ~다

고목에도 잎이 피고 벌 나비는 봄을 찾는데 좋~다

내 친구는 봄이 온 줄 왜 모르시나요. ~다

'먼 산에 아지랑이' 요즘 이 노래가사가 떠올려지면 벌써 십 수 년도 더 전 처음으로 고향 마을의 모교를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 나는 교정의 풍경에서 내가 공유할 추억의 소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잠시 생각에 빠져든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40년 전, 어린 팔로 서너 아름도 족하게 되는 벚나무에서 이 맘 때쯤 탐스럽게 익은 버찌를 따먹기도 하고 주워 먹기도 했었다. 이제 그 악동들이  놀이터로 활개치고 놀던 벚나무의 짙은 그늘도 없다. 궁기 면하려 수시로 학교 드나면서 버찌 따먹고 모두 쥐잡아 먹은 고양이처럼 검붉은 입술로 싸돌아 다녔던 추억의 자취도 없다. 버찌나 오디, 찔레 순, ⁰짠다구 뿌리, ¹뱀딸과 함께 이즈음 즐기던 단골 간식거리였었다.

학교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국민학교 교사 건물의 전형이었다. 콜타르 칠한 검은 판자를 이어 붙인 벽에는 늘 기분 좋은 기름냄새가 났었고 지붕은 납작하고 거무튀튀한 기와로 이어져 있었다. 판자 지붕으로 덮여져 있는 학교 공동우물 가에는 늘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길어올리는 펌프물 소리가 들렸었고 마중물을 살짝 부으면 신기하게도 물이 콸콸 길어 올려졌었다.

해방된 지 10 여 년 된 그 때는 모든 게 그대로 일제 강점기 역사의 상흔으로 남아 있었다. 교사 마룻바닥 환기통으로 해서 컴컴한 마루 밑으로 몸을 바짝 낮추어 기어들어 가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담력 겨루기였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골 사이로 기어 다니면서 아이들이 마룻바닥 틈으로 빠뜨린  연필 동가리랑 지우개 쪼가리를 한 손 가득 쓸어담아 온다. 어린 마음에 그 당시로서는 큰 수확이었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소중한 것을 획득한 우리는 만족한 웃음을 짓곤 했었다. 몸피가 유달리 작았던 나는 마루장 밑을 마치 쥐나 고양이처럼 잽싸게 헤집고 다녔었다.

이제는  모두 가고 없다이제 그 자리는 두부모를 포개어 놓은 듯 한 새로 지은 콘크리트 교사가 자리 잡고 있다. 연신 '히히헤헤' 하던  그 악동들은 이제 50초반, 초로(初老)의 세월을 살고 있다관내 장거리 통학생용 버스가 주차하고 있다. 면내 모두 6개교가 있었는데 5개교는 폐교되고 몇몇 학생들은 이 통학버스로 등하교한다는 것이다. 이제 학교 안은 모두 캡스 경비구역으로 변모하였다.

이 길이었던가, 저 울타리 옆이었던가. 봄날은 깊어 가는데 땅버들 가지 꺾어 ²호때기 만들어서 입을 오므리고 있는 폐활량을 다해서 소리내기 했던 곳이 여기였던가. 아니 저기였던가. 나는 하염없이 흐트러지려는 상념을 주워 모았다. 그리하면서 우리는 곡조도 가사도 출처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소년시절의 꿈을 키워갔었다.

증조부님과 같이 이맘때쯤이면 봇도랑이나 수리조합 둑으로 소풀 뜯거나 먹이러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증조손이 함께 했던 2,3년의 기간, 그 때 나는 증조부님과 같이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를 흥얼거렸었다. 저 언덕 너머였던가, 저 들녘 한가운데였던가. 그 들 한가운데로 난 도랑에는 송어며 피라미, 송사리, 모래무지 등이 바글바글했었다.

독초인 ³약국때를 짓이겨 도랑에 풀어내어 고기잡이에 신바람 나던 정경이 눈에 선하다. 한참 뒤에 힘없이 떠오른 고기들이 흰 배때기를 드러내면 그냥 주어 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께스가 금방 그득해 지는 것이다.

나는 길옆 아직도 굵은 줄기를 뿌리내리고 있는 측백나무 울타리 밖으로 나와 논두름길을 걸어본다. 새댁 윗저고리처럼 샛노란 민들레가 소담스레 웃고 있다. 그래, 민들레는 그 때 민들레로구나. 변하지 않는 것이라곤 이름들도 정겨운 민들레,  ⁴독새풀, ⁵풀씨,  토끼풀, 엉겅퀴, 제비꽃....... 너희들의 이름을 불러보니 잃어버린 자식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던 이산(離散) 가족의 심경으로 돌아가나 보다. 어찌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잊힌 이름이던가. 민들레와 뺍쟁이가 길가 친구 되어 주던 이 길을 얼마나 오르내렸었던가

[위의 글은 나의 유·소년기(幼少年期)를 회고한 것이며, 2002년 5월 말에 쓴 것임.] 2020. 4. 2.                                                                                                                                              

[주(注)]

⁰짠다구 : ‘잔대’의 토박이 말

¹뱀딸 : '뱀딸기'의 토박이  말

²호때기 : '호드기', '버들피리'의 토박이 말

³약국때 : '고마리'의 토박이 말

⁴독새풀 : '둑새풀'의 토박이 말

⁵풀씨 : '자운영(紫雲英)'의 토박이 말

⁶뺍쟁이 : '질경이'의 토박이 말